[바른말 광] '이설주'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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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통일은 표준시에서 먼저 이뤄지게 됐다. 30분 늦췄던 북측의 원상회복으로 남북 간 표준시가 5일 통일된다. 한데, 정작 통일돼야 할 일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에 대한 표기에서다. <부산일보>를 비롯한 대부분 신문이 '리설주 여사'로 썼으나 종합일간지 가운데 딱 두 신문은 '이설주'라고 썼다. 같은 사람을 두고 표기가 엇갈린 것이다. '리설주 여사'는 사실 청와대와 정부의 공식 호칭이다. 청와대는 4월 6일 '리설주 여사'로 쓴다고 언론에 알렸다.

물론 이설주로 쓴 신문들도 근거는 있다. 말에 관해선 청와대보다 훨씬 더 권위 있는 국립국어원이 이설주로 표기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1992년 10월 19일 국어심의회 한글분과위원회는, 원칙적으로 북한의 고유 명사 표기도 한글맞춤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2013년 5월 30일, '최용해/최룡해, 이설주/리설주' 표기가 혼란스러워지자 국립국어원은 량강도, 로동신문도 양강도, 노동신문으로 쓰라며 '북한 고유 명사 표기 시 두음 법칙 적용'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다룬 언론 보도에서 보듯이, 이런 결정과 권고는 힘을 잃은 듯하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부조화 문제. 북한에 대한 정보가 꽁꽁 묶였던 예전과 달리 이젠 사진뿐만 아니라 동영상까지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런 판에, '로동신문'이라는 제호가 선명하고 '룡성맥주'라는 상표가 뚜렷한데, '노동신문, 용성맥주'라고 쓰는 건 암만 생각해도 어색한 일이다. 게다가 이건 '있는 그대로, 진실을 보도한다'는 언론의 신뢰성과도 직결되는 문제인 것. 일반 명사 '랭면, 량심'을 '냉면, 양심'으로 고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다음은 일관성 문제. 이설주를 고집하는 신문들 스스로도 그동안 '공노명, 나응찬, 유현진'이 아니라 '공로명, 라응찬, 류현진'으로 써 가며 이미 표기법을 어기고 있는 터. 두음 법칙이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해야 할 원칙은 아닌 것이다.

'면전 효과'도 있다. 당사자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라면야 몰라도, 눈앞에서 "나는 리설주"라는 사람더러 "아니야, 너는 이설주"라 우기는 건 아무래도 좀 우스운 일이다.

해서, 이번 기회에 국립국어원이 북한 고유 명사, 특히 인명은 일반 명사와 분리해서 정리해 주기를 청한다. 급물살을 타는 남북 관계만큼이나, 급증할 사람 왕래만큼이나 표기법 정리는 시급한 일일 터.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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