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의 길] 8. 한국해양대 박한일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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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블루오션' 창의성·소통능력 키워 항해하자"

한국해양대 박한일(61) 총장은 "단순 기능은 이제 로봇과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기 때문에 승선 위주의 인력 양성은 줄이고, 운용·관리할 전문 인력은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해양대는 지난해 8월 '해양 분야 4차 산업혁명 전략위원회'를 꾸렸다. 강선배 기자 ksun@

지난달 25일 오후, 부산 영도구 동삼동 한국해양대 정문에 들어서자 갯내와 함께 검은 제복의 학생들이 눈길을 끌었다. 가끔 같은 차림의 여학생도 눈에 띄었다. 검은 제복은 해사대 학생들의 상징이다. 전체 학부 학생 6700명 중 거의 30%(1995명)가 해사대 소속이다. 한국해양대 박한일(61) 총장은 "앞으로 기계와 인공지능이 만나면 바다의 가능성은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앞에서 바다의 '기회와 위협'에 대해 박 총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기존 지식 새롭게 통합하는 능력
변화에 유연한 토론·협업 태도 강조

해양 분야 IMO 등 국제적 흐름 중요
선제적 대응·발 빠른 기회 포착 필요

로봇과 인공지능이 대체 못 하는
운용·관리 전문 인력 양성에 힘쓸 것

■불확실한 미래, 유연함이 대안

"그동안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를 앞으로 맞이할 것입니다. 나름대로 예측하고 대비한다 해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박 총장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불확실성을 남달리 크게 보는 듯했다. 아무래도 바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국해양대의 특수성이 작용한 듯했다. 그는 "앞으로 많은 영역이 인공지능을 장착한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며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에서 창의성과 의사소통능력이 뛰어난 인재가 경쟁력 있게 살아갈 것이다"고 말했다. 박 총장이 말하는 창의성과 의사소통능력은 무엇일까? 창의성에 대해 박 총장은 "데이터화한 기존 지식을 넘어서 새롭게 연결·통합하는 능력"이라고 규정했다. "영역을 넘어 다른 분야와 소통할 때 새로운 창의적 조합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통합적인 사고방식도 매우 중요합니다. 한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뿐만 아니라 통찰력을 갖고 다른 분야와 통합·융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박 총장은 내 의견, 내 분야, 내 지식만 고집하지 않는 유연함도 강조했다. "많은 학자들이 미래를 예측하지만 예상하는 미래와 실제 미래는 차이가 클 수 있습니다. 결국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면 유연성을 갖고 어떤 변화에도 적응 가능한 능력을 키워야겠지요." 여기에 추가한 것이 의사소통능력이다. 박 총장은 "토론을 통한 협업이 가능하려면 정보전달능력뿐만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수렴하는 소통능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변화의 파도는 대학에도 밀려온다. 박 총장은 "지금까지 대학은 사회의 수요에 맞춰 인재를 공급해 왔다"며 "이제 단순히 숙련도 높은 인재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고 창출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습 공간과 학습법의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또 텍스트 중심의 교육, 암기식 교육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웬만한 지식은 손안의 컴퓨터인 핸드폰이 제공한다"며 "기존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토론하도록 수업방식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총장은 "도전은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허용되는 대학시절에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깨어 있는 조직은 합리적·체계적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고 자신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해 8월 의욕적으로 출범한 것이 '해양 분야 4차 산업혁명 전략위원회'다. 교육, 산학연구 등 2개 분과를 뒀다. 지난 2월에는 국회에서 관련 포럼도 열었다. 해양 분야의 시대적 과제와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박 총장은 "해양 분야는 국제해사기구(IMO)가 있기 때문에 국제적 흐름이 중요하다"며 "이런 흐름을 따라가려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자율운항선박 등 '블루오션'

한국해양대는 해양 분야 특성화대학이다. 박 총장은 역시 바다를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의 기회와 위기를 풀었다. "단순 기능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기 때문에 승선 위주의 인력 양성은 줄이고, 운용·관리할 전문 인력은 늘리는 쪽으로 가야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회에 방점을 찍었다. "바다에서는 그동안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 많았습니다. 엄청난 유용자원을 품고 있는 해양 분야는 그 가치가 무궁무진해 앞으로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해운·조선 분야의 위기도 4차 산업혁명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박 총장은 "해양산업은 변화가 절실하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오히려 더 발 빠르게 받아들일 것"이라며 "다른 분야보다 기회가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자율운항선박이 핫이슈다. 박 총장은 "자율운항선박 연구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데 우리가 이 분야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람 없이 100% 자율 운항하는 선박이 가능할까. 박 총장은 "기술만 놓고 보면 20년 안에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이유는 뭘까. "보통 배에 22~24명 정도 승선하는데 바다에는 워낙 돌발상황이 많습니다. 태풍을 만나면 진짜 산만한 파도가 밀려옵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많기 때문에 완전 무인화는 어렵고, 인력을 축소하는 선에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국제적 협약도 걸림돌이라고 본다. 박 총장은 "결국 IMO가 동의해야 하는데, 선·후진국 간 차이가 커 합의를 이루기 힘들 것이다"고 전망했다.

한국해양대는 육상에서 선박을 직접 관리하는 e-내비게이션, 수중로봇, 해상드론 등의 연구에도 집중한다. 육상 컨트롤타워와 자율운항선박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해상드론, 수중탐사를 할 수중로봇 등은 유망 기술이다. 박 총장은 "앞으로 도선사나 선용품을 드론으로 실어나르는 날이 올 것"이라고 소개했다. 부산시와도 긴밀히 공조한다. 대표적으로 함께 추진하는 것이 '스마트선박 SM(선박관리) 플랫폼 글로벌 서비스센터'다. 조선기자재산업의 기반이 탄탄한 부산이 각종 선박부품을 공급하는 기지가 되기 위해 실증센터 구축도 논의 중이다. 해양수산 빅데이터, 오는 9월 개원하는 해양금융대학원도 주목할 만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해양 분야는 말 그대로 '블루오션'이다.

김마선 기자 edu@busan.com

■ 박한일 총장은

1957년 경남 창원시에서 태어났다. 마산고와 한국해양대 기관학과를 졸업한 뒤 1년 6개월 동안 외항 상선을 탔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런던대 대학원에서 해양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1987년 모교인 한국해양대 교수로 왔다. 2012년 한국해양대 총장으로 선출됐고, 2016년 연임했다. 박 총장은 "연임을 하다보니 (대학행정에 대해) 통합적 사고가 가능하고, 추진력 있게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한국해양대는 지난해 국민권익위의 4년제 국·공립대 청렴도 평가에서 전국 1위를 했다. 박 총장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초대·2대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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