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정상회담, 또 하나의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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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또 한 가지는 잘못된 것에 대해서 이것이 앞으로 점차 고쳐 나가야 하는 것은 좋지만, 이게 말이 적폐, 사실 이 적폐란 용어도 북한에서 많이 썼던 용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적폐란 용어가 남한에서 썼던 말이 아닌데요….'

2017년 7월 13일 정우택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 말이다. 좀 더 고전적인 버전은 2001년 3월 16일 '바른 통일과 튼튼한 안보를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대표 김용갑)이 한완상 부총리에 대해 낸 성명.

"오로지 북한에서만 사용하고 있는 '창발'이라는 용어는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그 뜻조차 알 수 없는 해괴한 것으로, 한 부총리의 친북·좌파적 편향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한 부총리는 국민 앞에 사과하고 사퇴하라."

이쯤 되면 '조선'도 쓰지 말자는 우스개가 나올 법한데, 실제로 1950년 당시 김활란 공보처장이 <조선일보>의 '조선'이 북한이 쓰고 있는 국호이니 바꿔야 한다는 안을 국무회의에 상정했다는, 놀라운 얘기가 전한다.

한데, 세월이 흘러서 보면 우습기만 한 저런 경직된 모습이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에서도 보인다. 아래 말들을 보자.

'가는잎소나무, 거품약, 봄마중, 불끄기.'

이 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북한어'다. 각각 '스트로부스잣나무, 기포제(起泡劑), 봄맞이, 소화(消火)'의 북한말이란다. 그런데, 묘하다. 왜 북한말이 나빠 보이거나 낯설지 않을까.

'이명박정부 때 4대강사업으로 낙동강에는 모두 8개의 보가 들어섰다.…보는 '고정보'와 '가동보'로 구성되어 있고, 가동보의 수문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수위를 조절하게 된다.'

표준사전에 따르자면, 이 기사에 나온 '가동보'도 '가동댐'의 북한말이다. 하지만, 한 포털에서 뉴스를 검색하니 '가동보'는 3770번, '가동댐'은 5번 나온다. 이러면, 대체 표준어와 북한말을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차라리 사전에 북한말이라고 올리지 않았더라면 꺼림칙하진 않았을 터.

어쨌거나, 표준어보다 더 표준어스러운 북한말을 보자면 '언어 이질화'는 지나친 걱정 같아 보이기도 한다. 물론 '스킨로션, 일조량, 양강도'를 북한에선 '살결물, 해비침량, 량강도'라 부르기는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통역이 필요치 않은 유일한 정상회담이 남북 간 정상회담이라는 것. 내일 회담이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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