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댓글진창'에서 헤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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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섭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청소년 사이에서는 '댓글'과 '엉망진창'을 합친 '댓망진창'이라는 은어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상황은 다른 말로 하면 '댓글진창'이다. '드루킹'으로 알려진 인물은 유령출판사를 차려 놓고 인터넷 포털사이트 기사에 '매크로'보다 더 강력하다는 '킹크랩'을 통해 정치인이 요청하는, 아니면 자신이 스스로 판단한 기사에 수많은 댓글을 달아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의 생각을 조종했다고 한다.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한 후보는 그 댓글의 위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제가 누구의 아바타입니까'라고 묻는 바람에 오히려 역풍을 맞아 결국 대선 고지에서 처참한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렇듯 조작된 여론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역사의 흐름을 돌려 놓기도 한다. 여론 조작의 주범으로 지목된 몇 사람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고, 그 배후를 캐 보겠다는 야당의 특검 발의가 진행되고 있다. 또 한편으론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 '헤비 댓글러'를 퇴출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이런 혼탁함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켜 낼 수 있을까.

참된 신념과 가치 없으면
선전·선동에 흔들리기 쉬워

여론조작에 휩쓸리는 군중 아닌
선명한 '극단'이 필요한 때

제대로 된 정치교육 이뤄져야
'댓글 조작' 설 자리 없을 것


필자는 댓글 등으로 인한 여론조작의 위험성을 없애기 위해 우리 국민 모두가 '극단적이 되어야 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이야기를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초기 기독교가 탄압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로마의 국교가 되고, 이민족의 침입으로 로마가 망한 후 여러 가지 다양한 기독교의 분파들이 종교회의 등을 통해 정리되면서 중세는 안정적인 가톨릭 중심 사회가 되어 갔다. 그리고 정치와 종교가 손을 잡고 중세 질서를 지탱하기 시작하면서 조직화, 계급화 등이 진행된 한편 이에 대항하는 세력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즉 정반대의 모습으로 민중의 틈을 파고든 이단의 등장이었다. 그 후 종교재판이나 마녀사냥 같은 중세의 흑역사가 진행된 것을 우린 알고 있다. 그러나 어두운 역사의 배후에는 '중간자'들이 존재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아예 이단박멸의 열정으로 가득한 교황 편에 강하게 서 있거나, 아니면 이단의 교설에 온전히 의존한 사람들에게는 특정 세력의 '선전과 선동'이 먹혀들지 않았다. '거짓뉴스'에 현혹되고, 고문과 화형을 자행했던 것은 중도자인 척하면서 애매하게 방관하며 정치적인 먹잇감을 찾던 집단들이다. 시대마다 이런 중간자들은 이리저리 파도처럼 휩쓸리면서 약자를 대상으로 한 사회적인 분노에 앞장서고 혐오를 일상화하고 역사를 그르쳐 왔다. 이러한 실패를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 모두가 일찌감치 정치를 배우고, 진보와 보수의 참된 가치를 익히면서 각 진영의 이상을 밥상에서 전수하고 토론하며 '극단적'인 색깔을 갖게 되었다면 아마도 '댓글'이라는 시시한 조작에 넘어가지 않고, '가짜뉴스'를 기웃거리지도 않을 것이다. 서구에서는 어릴 때부터 식탁에서 부모의 정치적 성향을 들으면서 자라고, 학생 때는 이미 한 진영의 견습생으로 바닥부터 뼛속까지 한 극단을 살아 온 사람들을 길러 내고 있다. 우리도 이제 젊은이들에게 바람직한 정치교육을 통해 한 입장을 취하게 하고, 한 극단을 살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균형 감각이라는 애매한 태도로 부동(浮動)의 바다에 젊은이들을 내버려두지 말고, 그 누가 난리법석을 피우더라도 꿈쩍하지도 않을 시민들로 길러 내면 되지 않을까. 표를 모아 주겠다고 하고, 여론의 풍향계를 돌려 놓겠다고 장담하는 사람들에게도 '됐으니 그만하라'고 말할 수 있는 정치인들을 키워 낸다면, 그리하여 그 어떤 바람에도, 소문에도,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자신이 직접 뿌린 것만 거두는 것이 진정한 정치의 가치임을 믿고 살아 가는 극단주의자들이 가득 찬 세상에서는 결코 '여론조작단'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극단'이라는 이름이 좋지 않은 이미지와 왜곡된 용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극단들은 서로 통한다. 침묵하는 다수로 있다가 조작된 여론에 휩쓸리는 어중간한 군중이 되기보다는 선명한 극단주의자로 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정말 철저하게 그리고 순수하게 양극단으로 양분된 사회, 도덕적으로 혼탁하지 않으면서 흐릿한 색깔을 지워 버려 선명한 원색이 돋보이는 사회, 그 사회 속에서는 '댓글조작'이니 '여론몰이'니 하는 유언비어의 난무는 더 이상 자리를 펴지 못할 것이다. 참되고, 탁월한 극단주의자들, 그들이 우릴 이 엉망진창의 구렁텅이에서 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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