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우리글 배움터 '온천리 야학교' 실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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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온천 영화강습당' 병설 유치원 제4회 수업기념 단체 사진.

일제강점기 부산 동래에 있으면서 우리말을 가르쳤던 '온천리 야학교'의 실체는 온천1동에 있었던 '동래온천 영화(永化)강습당'이었음을 밝혀주는 기념비와 사진이 발견돼 주목된다.

금강식물원 인근 금강사(부산 동래구 온천동 1번지) 내 삼성각에서 서쪽으로 50m가량 떨어진 곳에는 '박우영여사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향토사학자 주영택 원장
설립자 박우영 기념비 통해
'금산야학교'로 불리던
'동래온천 영화강습당' 확인
학생 단체 사진서도 입증


이 기념비의 비문에는 '박우영은 정희조의 부인이며, 시속이 퇴락하는 것을 걱정해 항상 교육에 뜻을 두었는데, 금년 봄에 거금을 출연해 교사를 지으니 취학한 아동의 수가 모두 100명이었다. 문화발전에 공적이 막대하니 비석을 세워 그 공덕을 기념하기로 뜻을 모았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비의 건립 연도는 일제강점기인 소화 12년(1937년), 건립자는 온천 유지 일동이다.

이 비는 주영택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이 범어사 비림(碑林)의 '조탑대시주공덕기비'의 비문에서 '대시주 정희조 공이 소화 12년(1937년)에 온천리 야학교를 건축하였다'는 공적 기록을 보고 당시 행정구역상 온천리였던 금산마을(현 온천1동에 있었던 자연마을) 일대를 조사하던 중 찾아냈다. '조탑대시주공덕기비' 비문에 따르면 정희조 공은 부산 좌천정 출신으로 자(字)는 영화(永化)이며, 인천신상회사 사장 등을 역임한 사람으로, '박우영여사 기념비' 비문에 그의 부인인 박우영 여사가 1937년 거금을 출연해 지었다고 언급한 학교가 바로 정희조 공이 1937년 건축한 온천리 야학교와 동일한 학교임을 알 수 있다.

주 원장은 현장 조사 결과 박우영 여사가 설립한 야학교는 금강사에서 남쪽으로 수 백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래온천 영화(永化)강습당'이었으며, '박우영여사 기념비'도 여기에 세워져 있다가 후일 지금의 금강사 자리로 이전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박우영여사 기념비'. 조진효 제공
주 원장이 확보한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금산야학교로 불리던 '동래온천 영화(永化)강습당'의 위치는 동래구 금강로 147번길 골목길 안에 있는 현재의 음식점 자리였고 거기에 '박우영여사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또 야학교 바로 아랫집에 살았던 동네 유지 정필모 씨가 야학교 교장을 맡았으며, 야학교는 1939년 병설 유치원 예비과(1년 과정)를 개원해 금산·온천·소정마을의 7~8세 남녀 아동들을 대상으로 이름 쓰기(한글), 셈하기, 일본어, 노래, 무용 등을 가르쳤다.

이 같은 사실들은 당시 병실 유치원 3회와 4회 졸업생인 이영환(85·금산마을), 조진효(83·소정마을) 씨 등의 증언과 조진효 씨가 제공한 유치원 제4회 수업기념 사진이 잘 말해준다. 특히 이 단체 사진의 배경으로 찍힌 야학교 현판에 한자로 '동래온천 영화강습(당)'이라고 적혀 있어 박우영 여사의 남편 정희조의 자인 영화(永化)를 붙여 야학교의 교명을 지은 사실이 확인된다.

주영택 원장은 "동래온천 영화강습당이 건립된 당시는 조선총독부가 내선일체의 식민지 교육을 시키던 때인데, 그 당시 야학교에서 미취학 아동이나 부녀자 등에게 조선어인 한글을 가르치고 문맹 퇴치 운동에 앞장선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박우영 여사가 야학교를 세워 민족교육 사업을 벌인 것은 매우 중요한 우리 지역의 역사로서 고찰되고 연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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