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의 길] 7. 부산외대 정기영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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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지식 넘어 글로벌 소통 역량 키우겠다"

부산외대 정기영(55) 총장은 "지식이 과거를 아는 것이라면, 지혜는 미래를 아는 힘"이라며 "창의적 자신감으로 부딪치고 좌절하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또 "외국어를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힘을 기르자"고 말했다. 이재찬 기자 chan@

지난 18일 오후 부산 금정구 남산동 부산외대 만오메모리얼 앞 광장은 남녀 학생들로 왁자지껄했다. 중국어, 영어 같은 외국어도 심심찮게 들렸다. 건물 안 커피숍은 더했다. 금정산에 안긴 숲속 캠퍼스는 이국적인 정취마저 풍겼다. 이날 총장실에서 만난 정기영(55) 총장은 "재학생 8000명 중 1200명(15%), 교수의 35%가 외국인이다"며 "현재 54개 나라의 학생이 있는데 3년 뒤 100개까지 늘리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외국어를 배우고 외국인과 소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 총장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인간만의 '플러스 알파' 필요한 시대
언어 활용 교섭·협상하는 능력 강조

문제해결력 키우려 교양교육 강화
교양과목 이수만으로 부전공 인정도

글로컬 융복합 창의 인재 양성 목표
해외취업률 4년 연속 전국 1위 기록
학생·현장 중심 교육과정 개편도 추진

■부딪치고, 좌절하고, 울어라


외대는 전국에 2개(한국외대·부산외대)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외국어는 무엇일까. 정 총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구글 번역기가 90% 이상의 정확도로 번역을 합니다. 초벌 번역은 기계에 맡겨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이제 인간은 플러스 알파(+α)를 갖춰야 합니다. 바로 언어를 활용해 교섭·협상하는 능력입니다. 다언어·다문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지요." 외국어라는 기술·능력에 국한하지 말고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 총장은 "외국어를 할 줄 아는 것은 2~3개의 인생을 사는 것과 같다"며 "언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라고 의미를 뒀다. 그는 "IT 언어도 기계와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외국어"라고 덧붙였다.

그 '플러스 알파'를 위해 부산외대가 신경쓰는 것이 바로 교양교육이다. 정 총장은 "교양은 기초체력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전공을 갖고 평생 살기는 힘든 세상이 되었다"며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해 선도하기 위해서는 기초교양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어는 직업교육화하고, 거기에 교양교육을 보태는 것이다. "2000년 세월을 견뎌낸 인류의 지혜가 담긴 문사철(文史哲·문학 역사 철학)의 교양교육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비판적·창의적 사고와 복잡한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정 총장은 "교양이야말로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라며 "문사철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자칫 앵무새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외대는 교양 과목 이수(43학점)만으로 부전공·복수전공을 인정하는 아너스(Honors)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기초와 심화 과정(아르케)이 있는데, 기초 교양으로는 글쓰기, 말하기, 독서 등이, 심화과정에는 문화와 예술, 과학과 기술 같은 게 있다.

정 총장은 '지식' 대신 '역량'에 무게를 뒀다. "지식을 기준으로 보면 정답이 있겠지만 역량 측면에서는 각자의 정답이 있을 뿐이고 그것을 설득하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앞으로 워킹 딕셔너리(walking dictionary·박식한 사람)보다는 응용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대접받을 것입니다." 정 총장은 "지식이 과거를 아는 것이라면, 지혜는 미래를 아는 힘"이라며 "창의적 자신감으로 부딪치고 좌절하며 울어보길 바란다"고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상으로 창의성(인지역량), 인성(정서역량), 협력(사회역량), 자기주도·평생학습 능력을 강조했다.

■전세계가 캠퍼스다

'언어를 넘어 세계로, 미래로!' 정 총장 취임 뒤 새로 만든 캐치프레이즈다. 대학의 목표는 '다언어·다문화 기반 글로컬 융복합 창의 인재 양성'이다. 외국어를 바탕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전문가를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정 총장은 "언어를 바탕으로 여러 국가에 대해 폭넓게 생각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협력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구촌캠퍼스'를 지향한다. 외국인 학생을 앞으로 3000명(3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다. 한국의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안이기도 하다. 지구촌캠퍼스가 단순히 외국 학생 유치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정 총장은 "지구촌 전체가 캠퍼스라는 말이기도 하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단일민족 신화를 버리고, 지구촌 사람들과 어울리는 개방적·관용적 자세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목표 아래 5대 핵심역량으로 정한 것이 노마드(NOMAD)다. 도전(N), 융합(O), 혁신(M), 나눔(A), 확장(D)이다. 유목민(nomad)처럼 경계 없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자는 의미다. 이런 철학 덕분일까. 2017년 기준 부산외대 해외취업 학생은 110명(해외취업률 6.2%)으로 전국 대학을 통틀어 1위다. 4년 연속이다. 정 총장은 "한국의 기업 인사 담당자는 주로 자격증, 학점, 인턴경력, 학벌 따위를 보는데 일본은 커뮤니케이션 능력, 일에 대한 의욕, 인품 등을 본다"며 "우리 학생들의 해외 취업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총장은 새로운 구상도 밝혔다. 한국 학생 전부를 외국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는 "캐치프레이즈 중 '세계로'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짧게는 2주, 길게는 2년까지 모든 한국인 학생을 외국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학생을 해외에 보내면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언어 습득과 문화 체험을 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해결과 갈등해소 능력도 키울 수 있지요."

캐치프레이즈에서 말하는 '미래로'는 무엇일까. 이것은 교육 방식의 변화다. 정 총장은 "현재는 수업이 교수 중심이다"며 "앞으로 학생, 현장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외대는 2014년부터 교육과정 개편을 진행했다. 정 총장은 "기초교육과 교양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컨설팅을 통해 담당기구 강화, 교양교육과정 개편, 인력 보강 등을 추진한다"며 "2015년부터는 만오교양대학을 설치해 운영체계를 갖추는 중"이라고 밝혔다.

교육과정 개편은 앞서 정 총장이 학장으로 있을 때 시도했다. 2006년 일본어창의융합학부를 만든 것이다. 통·번역, 호텔관광, 일본IT, 언어문화콘텐츠 등 4개 과로 재구성했다. 일본어창의융합학부 학생은 800명이고 전공·부전공을 합쳐 전체 재학생의 3분의 1이다. 정 총장은 "일본어 교육은 우리가 전국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며 "이런 변화를 앞으로 전체 학교로 확대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부산외대에는 21개 언어 전공이, 45개 일반 전공이 있다. 정 총장은 "언어를 기반으로 융합할 수 있도록 일반 학과 학생도 언어를 부·복수 전공으로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소개했다. 김마선 기자 edu@busan.com

■ 정기영 총장은

1963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포항고와 부산외대 일본어과를 졸업한 뒤 일본 도카이(東海) 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문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땄다. 1994년 부산외대 교수로 임명된 뒤 언론사 주간, 대외협력처장, 인사행정실장, 국제교류처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월 제9대 총장에 취임했는데, 1982년 부산외대 설립 이래 모교 출신 내부 총장은 처음이다. 그는 부산외대 1회 입학생이자 졸업생이다. 또 대학 총장으로는 젊은 편이다. 정 총장은 "캠퍼스 이전도 끝난 만큼 학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실을 다지겠다"며 "학내 구성원과 5만 동문이 자랑하는 학교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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