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남북 정상회담 '기대와 경계'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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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준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왜 우리나라는 독일을 향해서 끈질기게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 1905년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는 정부를 향해 불만스럽게 물었다.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는 에드워드 7세의 조카이기도 한 터였고 그들은 유럽 왕족의 각종 모임을 통해서 오랫동안 친분을 다진 사이였다. 왕의 질문에 대답할 사람은 영국 외무부의 최고 독일 전문가 에어 크로였다. 그는 에드워드 7세의 질문을 두고 1년 동안 연구를 한 끝에 1907년 새해 첫날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외교 강의를 했다.

"독일은 자국의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서 더 많은 함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강력한 독일이 국제사회에서 지적, 도덕적 리더십을 갖는 것은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만약 독일의 궁극적인 목적이 대영제국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물론 독일은 그런 계획을 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으로서는 독일을 신뢰할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독일의 의도 같은 것은 아무 상관이 없으며,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역량입니다." 말(의도)보다는 행동(역량)을 보고 상대를 판단해야 한다는 '크로 메모'를 영국은 진지하게 받아들여 국방력을 강화했고, 그 결과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 승리할 수 있었다.

말보다 독일 행동 보고 판단
영국, 국방 강화 1차 대전 승리

북핵은 정권 유지 최고 수단
보유 비용이 더 클 때만 포기

핵실험·ICBM 중단 선언 불구
북 의도 관계없이 경계 계속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과 이후 개최될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연일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책상 위에 핫라인 전화기가 설치되었고, 4·27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휴전체제를 평화협정 체제로 바꾸는 공동선언이 발표될 것이라 한다. 또한,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선제적 조치에 우리 정부는 환영을 표시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것은 북한과 세계를 위해 아주 좋은 뉴스"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몇몇 언론에서는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의 전례를 따르려 한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그런데 궁금한 점은 '왜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북한이 갑자기 핵실험과 ICBM 발사 중지를 선언하였는가?'이다. 이에 대한 긍정적 해석은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다루어졌기 때문에 여기서는 경계의 목소리를 낼까 한다.

첫째, 북한은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겠다고 했을 뿐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ICBM 해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오히려 북한은 "핵 개발의 전 공정이 과학적, 순차적으로 다 진행되었고, 운반 타격 수단들의 개발사업도 과학적으로 진행되어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 검증됐다"고 말했다. 또한 "핵 위협이나 핵 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 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핵 보유국으로서 회담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 볼 수 있다.

둘째, 미국 대통령과 동등한 지위에서 이루어지는 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북한에는 큰 승리이다. 김정은이 트럼프와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면, 아버지나 할아버지도 이루지 못한 일 달성은 물론이고 동시에 정권의 대내외적 정당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트럼프를 테이블에 앉히기 위한 신뢰구축조치를 취하고 있다.

셋째, 북한은 핵을 포기하겠다고 제 나름대로 선언함으로써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그 비난이 미국에 향하도록 한다. 이는 한·미 간 이간과 남남 갈등을 유발하기 좋은 카드이다.

분명한 것은, 핵 개발은 북한이 매우 오랜 기간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투자한 사업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북한 지도부는 핵을 정권유지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다가오는 정상회담에서 핵을 보유하는 비용이 포기하는 비용보다 크지 않으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치를 수 있는 비용은 '코피 작전'과 같은 미국의 선제공격이나, 중국의 전면적 원조 중단이다. 그러나 북한은 장사정포가 남한 주민의 목숨을 담보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공격은 불가능에 가깝고, 중국이 자신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다가오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주변 국가들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제발전과 국민 생활 증진에 매진할 것을 희망한다. 그러나 정부는 상대의 말(의도)은 아무 상관 없으며, 중요한 것은 상대의 행동(역량)이라는 '크로 메모'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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