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칼럼] 작은 변화가 시민의 삶을 바꾼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은영 논설위원

'공영' 텃밭에 나가 겨우내 묵은 땅을 일궜다. 텃밭 앞에 '공영'이 붙은 이유는 부산시가 임차한 땅을 다시 개인이 분양 받아 사용 중이기 때문이다. 손바닥만 한 밭뙈기지만 이런 곳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올해가 마지막이라니 벌써부터 아쉽다. 땅 주인이 올 연말로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부산시에 통보하는 바람에 내년엔 새 텃밭을 찾거나 도시농부 9년 차 생활도 접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 땅 한 평 없이 거대도시 부산에서 도시농부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만만찮다. 매번 '농사' 짓던 곳을 떠나야 했던 이유는 공교롭게도 땅이 팔려서다. 대단지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인 한 곳은 봄이면 배꽃이 장관을 이루었고, 초여름엔 매실을 따고, 죽순을 캐서 장아찌를 담근 행복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텃밭을 함께 일구던 사람들과 주말마다 막걸리 파티를 즐기던 곳이었지만 아파트 택지개발 광풍에 한순간에 사라졌다.

부산분권혁신운동본부가 최근 공동체 상영회로 마련한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 '내일'을 관람하면서 공동체 텃밭의 즐거움을 떠올렸다.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구나 싶어 내심 반가웠다. 영화는 기후변화, 자원 고갈, 환경오염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풀기 위해 세계 10여 개국으로 떠나는 여정을 담았다. 농업·에너지·경제·민주주의·교육 등 5개 분야로 나눠서 아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쇠락한 자동차 산업도시 미국 디트로이트 시민들이 버려진 땅을 도심 농장으로 일군 시도는 아주 신선했다. 단순한 먹거리 생산을 넘어서 사회 일자리 창출과 공동체성 회복으로도 이어졌다. 또 쓰레기를 소각하거나 매립하는 대신 줄이고 재활용하고 퇴비로 재생산하는 샌프란시스코의 환경 정책과 지역화폐 사용으로 지역 경제도 살리고 주민까지 살리는 영국 토트네스 사례도 인상적이었다.

개발 광풍에 사라지는 녹색 터
도시농업도 충분히 대안 가능

지역화폐 사용·쓰레기 감량 등
'순환하는 삶'도 적극 고민해야

나로부터 시작하는 작은 변화
'전환도시 부산' 시발점 됐으면


어쩌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다르게 보였던 건 '지금, 나로부터 시작하는 작은 변화'를 택한 점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많은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나라도, 지금,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그것이 바로 '전환마을(Transition Town)' 혹은 '전환도시' 운동의 출발점일지 모르겠다. 2006년 아일랜드의 킨세일과 영국의 토트네스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기후변화와 석유정점(Oil peak)에 대비해 에너지 과소비를 줄이고, 세계화에 저항해 지역화를 꿈꾼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도시농업, 로컬푸드, 지역화폐 등의 실질적인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부산도 전환도시를 선언하지 않았을 뿐 반송마을과 대천천마을 등에서 이미 비슷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중요한 것은 전 지구적인 생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정부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일상적으로 하는 개인행동도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그렇게 하려면 적어도 내 삶을 내가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내 밥상에 오르는 밥과 채소는 어디에서 왔으며, 내가 먹고 싸고 버리는 것들은 다시 생태계로 순환될 수 있는가도 고민해야 한다. 지난달 강연차 부산을 찾은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않게 되면서 봄-여름-가을-겨울 순환에 대한 감각이 없어진다고 했는데 우리 삶 속에서 농업의 가치 회복은 정말이지 중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성장에만 너무 매달렸다. 도시개발만 하더라도 계속 외곽으로 뻗어나가 신도시를 만들어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그러면서 공동화현상을 빚게 된 도심은 다시 수조 원대의 돈을 들여서 재생 사업을 벌이는 역설을 자행한다. 정작 도심 개발을 하면서 제일 이득을 본 토건업자들에겐 한 푼의 기회비용도 물지 않게 하면서 말이다.

고가도로와 육교를 없앤 자리에 보행로와 광장이 돌아오게 된 것처럼 우리 삶이 달라지는 작은 변화를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식량과 에너지, 경제에 대한 자생력도 지역에서부터 키워 나가면 좋겠다. 골목 정원과 마을 텃밭을 가꾸면서 혼자 사는 어르신 안부도 챙기고, 조례만으로도 대형 마트 체인점을 규제할 수 있으며, 요산 김정한 선생이나 박차정 열사 얼굴이 들어간 지역화폐로 동네 빵집을 이용하고, 내가 버린 음식물쓰레기만큼 퇴비로 바꿔서 텃밭에 쓸 수 있는 그런 '전환도시'면 좋겠다. 사람과 삶의 질에 투자하는 그런 비전이 통하는 부산에 살고 싶다.

key66@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