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세상 속으로] '영생불멸' 플라스틱의 비극
/이상헌 논설위원

일본 시골마을에서 작은 빵집을 하는 와타나베 이타루는 '부패'를 신봉한다. 천연균과 자연재배 작물로 빵을 만들면서 겪은 시행착오로 그가 발견한 건 '부패'의 역할이다. 미생물에 의한 유기물의 분해 현상인 부패야말로 자연의 섭리이며, 방부제처럼 '썩지 않게' 인공적으로 고안된 물질이 생태계의 순환 구조를 파괴한다는 철학으로 빵을 굽는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란 책에서 그는 자연계의 부패하는 순환 속에서 균들이 빵이나 맥주, 전통술 따위의 고마운 먹거리를 만들어 줬다는 데 감사한다.
"모든 것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자연의 가르침과 달리 문명은 지구의 껍질인 흙을 벗겨내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를 채워 왔다. 흙을 매개로 이뤄졌던 생태계의 순환은 콘크리트에서 막혔다. 하여 "시골의 모든 옥토는 지렁이의 창자를 여러 번 거쳐 온 것이며 다시 여러 번 거쳐 갈 것이다"라는 생물학자 다윈의 말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생로병사 대신 영생불멸을 욕망한 문명은 마침내 썩지 않는 플라스틱을 발명했지만, 이내 난관에 봉착한다.
인위적으로 부패 막는 물질은
자연 생태계의 순환 구조 파괴
일회용품이면서 잘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비극은 현재진행형
중국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재활용 혁명을 가져올 기회
부패하지 않는 것이 축복이라기보다 재앙에 가깝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올 1월 프란스 팀머만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EU 집행위의 우선순위는 생산에 5초, 사용에 5분, 분해되는 데 500년이 걸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멈추는 것에 있다"고 했다. 1초 만에 만들어 20분 쓰고 버려지는 비닐봉지는 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 400년이 걸린다. 스티로폼은 거의 영구적으로 분해되지 않는다. 일회용품과 영생불멸의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은 결국 파국을 불렀다.
영생불멸하는 플라스틱의 비극은 도처에서 현실이 됐다. 올 2월 스페인 무르시아 해변에서 죽은 채 발견된 향고래의 사인은 플라스틱 쓰레기에 의한 복막염이었다. 향고래를 죽인 범인은 플라스틱이었다. 비닐봉지를 비롯해 로프와 그물 조각 따위가 위장과 창자를 가득 막고 있었는데, 뱃속에선 매립장서 흔히 보던 플라스틱 쓰레기가 29㎏이나 나왔다. 케냐에선 도축된 소의 위에서 비닐봉지가 20개나 발견됐다.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한 육지와 해양 생명체들의 불행을 플라스틱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인간이라고 피해갈 순 없다. 먼 나라 이야기도 아니다. 지난달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진의 연구 결과, 세계에서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높은 곳으로 인천·경기 해안과 낙동강 하구가 각각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비상 경보음이 울리기 전까진 위험을 자각하기란 쉽지 않다. 중국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인간을 옥죄어 오는 영생불멸 플라스틱의 위험을 알리는 경고등이란 점에서 차라리 다행한 일이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도 "중국발 쓰레기 대란은 전 세계를 혼란에 빠지게 했지만 결국 재활용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고 했다. 쓰레기를 돈 주고 버린다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1995년 쓰레기 종량제 도입 이후 찾아온 두 번째 기회다.
발생량 자체를 줄이는 게 답이다. 불편함의 내성이 약해진 인간에게 플라스틱 금단 현상을 이겨내라고 주문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과학자들이 플라스틱 먹는 변종 효소를 발견했다지만, 그 많은 플라스틱을 감당하긴 버겁다. 이참에 자연의 가르침에 따라 재활용 순환의 메커니즘이라도 제대로 확립해야 한다. 실컷 분리배출하고도 재활용업계에서 외면받는 페트병에게도 재생의 기회를 줘야 한다. 일본처럼 절취선 라벨을 넣고 무색 단일 재질로 통일하면 된다. 얼추 한 해 2억 장 넘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 비닐우산 커버는 빗물제거기로 사용량을 확 줄일 수 있다. 이런저런 실천법은 차고 넘친다.
그런 실천에 더해 재활용 쓰레기 대란에 관한 근본적 성찰을 멈춰선 안 된다. 형태가 있는 물질은 언젠가 스러져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며, 이를 거스른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된다. 지금은 개발도상국의 가장 가난한 가족에게 그 짐을 떠넘기고 있지만, 우리가 책임질 일이다. 중국 칭다오 인근 폐플라스틱 재생공장에 사는 두 가족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차이나'는 그래서 보는 내내 눈이 따갑다. 폐플라스틱에 오염된 강에서 건져낸 물고기를 튀겨 아무렇지도 않게 저녁상에 올리는 장면을 보면서 무심코 내가 버린 일회용품의 최종 행선지가 어딘지는 질문해야 한다. 그래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정의'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