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복지원 '절규'의 기록] 원장 일가의 '부활', 어떻게 가능했나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수용자 '피'에 젖은 땅 팔아, 폐원 후에도 호의호식

부산 사상구 주례동 옛 형제복지원 자리에는 현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은 이 부지를 1970년대 1400여만 원에 구입해 2000년대 초반 227억여 원에 판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본보가 단독 입수한 호주 골프장 관련 문건으로 인해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일가가 축적해 빼돌렸을 재산의 단면이 확인되고 있다. 독재정권의 위헌적 훈령을 근거로 부를 축적하던 박 원장 일가의 이 같은 재산 축적을 막을 골든타임은 1987년과 1996년 등 적어도 두 차례나 있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방조로 이 골든타임을 놓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공익사업' 명목, 헐값 불하받은 땅
아파트 부지로 매각, 수백억 챙겨
자유로운 매매 불가능한 땅이지만
부산시 승인, 재산 빼돌리기 방조

복지원 운영 당시 거액 보조금과
원생들 강제노역 대가까지 가로채

■매년 보조금만 수십억 원


형제복지원 사건 진실 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입수한 당시 부산시와 북구청의 자료에 따르면 1986년에만 형제복지원에 지급된 정부 연간 보조금은 생계비, 운영비, 피복비, 김장부식비 등을 합해 모두 19억 5000만 원에 이른다. 형제정신요양원에 지급된 정부 보조금까지 합하면 21억 1700만 원이 넘는다.

공식적인 보조금 외에도 비인간적인 강제노역을 통해 생산된 재화를 외부에 팔아 얻은 이익까지 합하면 원장 일가 주머니로 들어간 돈은 훨씬 더 불어난다.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들은 수년간 강제노역의 대가를 아예 받지 못하거나 퇴소할 때 교통비 수준밖에 받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인권유린과 부정축재로 몸뚱이를 불려나가던 형제복지원의 민낯은 한 검사와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에 의해 처음으로 드러난다. 1987년 1월 울주지청에 근무하던 김용원 검사는 지인과 함께 꿩 사냥에 나갔다가 100여 명의 사람이 철조망이 처진 작업장에 감금된 채 강제노역을 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김 검사는 곧장 형제복지원 내사에 착수한다.

비슷한 시기 신민당 소속 문정수(부산 북구) 국회의원 역시 '시민들이 이유도 없이 잡혀가 감금되고 고문을 당한다'는 민원을 여러 차례 접수하고 당 차원의 조사를 하기로 한다. 형제복지원의 민낯이 드러난 첫 문건인 신민당 진상보고서가 작성된 계기다. 수만 명에 달하는 피해자 관련 기록을 확보하고 부정 축적한 돈을 환수할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당시 전두환 정권은 형제복지원을 적극적으로 비호했다. 김용원 변호사는 "울산에서 경찰관 30명을 차출해 형제복지원 수용자 3000여 명을 모두 인터뷰하는 등 전수조사를 펼치려 했었다"며 "하지만 당시 검사장과 차장검사 등이 '뭘 자꾸 파겠다는 거냐'며 별다른 이유도 없이 수사를 막았다"고 말했다. 문정수 전 부산시장 역시 "신민당 진상조사단에 대한 정권과 여당(민주정의당)의 공세가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증언했다. 결국 '수박 겉핥기'식 조사로 박 원장은 징역 2년 6개월 형에 처해졌고, 형제복지원에 관한 방대한 자료 역시 압수하지 못했다.

■왕국 재건에 협조한 부산시

박인근 원장은 1989년 출소한 뒤 형제복지원 재단 이름을 '욥의 마을' 등으로 바꾸며 이미지 세탁을 시도한다. '일부 음해세력들의 '모함'으로 무너진' 복지왕국의 재건을 꿈꾼 것이다. 박 원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주례동 형제복지원 건물과 대지였다.

사회복지연대에 따르면 박 원장은 1996년 형제복지원 터인 사상구 주례동 대지 2만 5000여㎡를 포함해 법인 소유의 북구 덕천동, 강서구 대저동 등의 땅과 건물에 대한 기본재산 처분허가를 부산시에 요청한다. 박 원장은 1970년대 주례동 형제복지원 부지를 공익사업 명목으로 1400여만 원의 헐값에 매입해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무부 훈령 410호는 그 근거가 됐다.

위헌 소지가 다분한 내무부 훈령 410호에 근거해 국가로부터 불하받은 땅이기 때문에 매매가 자유롭게 이뤄져선 안 됐지만, 부산시는 이를 단순히 사회복지법인의 기본재산으로 보고 처분허가 신청에 대해 흔쾌히 승인을 해줬다. 지자체 승인을 받은 박 원장은 2000년대 초반 주례동 땅을 아파트 부지로 227억여 원에 팔아넘긴다. 사회복지연대 측은 공시지가가 227억여 원일 뿐 실제로는 더 큰 금액이 오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파트 부지 매각 이후 박 원장은 해수온천, 스포츠센터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넓혀 나간다. 이번에 관련 문건이 발견된 호주 골프장 사업도 포함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민간 사업자에 의해 건물이 헐리면서 형제복지원 피해 규명과 진상조사에 유용하게 쓰일 방대한 분량의 신상기록카드 등 관련 문건은 공중분해되고 만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