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현대사를 관통하다' 시로 시대를 써내려가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시, 현대사를 관통하다/이성혁 외

'광주민주항쟁'을 시로 얘기했던 시인 김남주. 부산일보DB

시(詩)와 역사가 결합하면? 결론부터 말하면 문학을 통해 복원되는 역사,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삶의 진면목을 만나게 된다. 문학으로 시대를 읽어내는 동시에 당대인의 삶을 섬세하게 조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문학이란 결국 삶의 생얼굴이 아니던가.

굴곡과 투쟁으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의 생생한 현장을 시로써 증언한 <시, 현대사를 관통하다>는 한국시를 통해 19세기 말 이후 현재까지의 한국의 근현대사를 성찰하도록 기획된 교양서이다.

광복·한국전쟁·촛불혁명 등
19세기 말 이후 현재까지
역사적 사건 관련 '시' 소개

윤동주·김수영 등 시인 통해
시로써 시대를 반영하고 증언


저자들인 대학교수와 강사들은 1876년 개항, 1910년 한일합병, 1919년 3·1운동, 1945년 광복, 1948년 4·3항쟁, 1950년 한국전쟁,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민주화운동, 1987년 6·10민주항쟁, 1997년 IMF 금융위기, 2016년 촛불혁명 등 우리 근현대사에 큰 변화를 가져온 역사적 사건들의 맥락 속에서 관련 시들을 소개하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얘기를 풀어간다.

김소월, 이상화, 임화, 백석, 이육사, 윤동주, 박두진, 모윤숙, 김수영, 신동엽, 김지하, 이성부, 김준태, 이성복, 황지우, 김남주,유하, 백무산, 송경동 등 당대 시인들은 격동의 근현대사의 물결 속에서 시로써 시대를 반영하고 증언했다. 시를 통해 생생한 숨결로 복원된 역사적 사건들은 문학과 역사의 뜨거운 만남을 보여준다. 곧 역사는 문학을 통해 온전히 복원되고, 문학은 역사를 통해 본연의 모습인 생생한 삶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책머리에서 "한국시와 함께 한국 근현대사를 살펴봄으로써, 독자가 그 시대를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사건뿐만 아니라 역사에 응전해왔던 사람들의 살아 있는 삶의 현장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그런 문학과 역사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말해준다.

시는 역사를 반영하는 동시에 역사에 응전하는 개인의 내면을 진솔하게 보여줄 수 있다. 시는 당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그 시대를 어떻게 인식했으며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이 책은 문학과 역사가 어우러지는 오작교를 놓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 속으로 기꺼이 여행하도록 이끈다. "시와 함께 한국 근현대사를 읽는다면, 독자는 그 시대를 간접 체험하며 실감할 수 있다"는 필자들의 유혹의 목소리가 달콤하다.

한국 근현대사를 개괄한 책들은 많이 있지만, 그런 개괄과 함께 그 시대 개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자기 시대를 바라보았는지 문학적으로 제시한 책은 많지 않다. 교과서적인 역사는 체험의 대상이 아니라 지식의 대상이 되기 쉽다.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땀과 눈물, 생각과 마음을 온전하게 전달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시 '참회록'의 한 부분을 보자.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의 뒷모양이/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이 시에 대해 문학평론가 이경수는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가기 위해 창씨개명을 하고 창씨개명한 이름을 연희전문에 제출하기 며칠 전에 쓴 시로 알려져 있다. 창씨개명이라는 선택을 하기까지 그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고 쓰고 있다.

이 책은 당대를 관통하는 시들에 대한 평을 통해 역사 개괄서의 비어 있는 부분을 보완한다. 서정시, 친일시, 친체제 시, 저항시, 문명 비판시 등 다양한 시들을 소개하면서 격동의 근현대사를 재현해 나간다. 이 책에 소개된 시들은 그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빛과 어둠의 흔적들이다.

이 책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말해주는 기록 자료들을 함께 게재해 당시의 시대 상황과 역사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도운다. 이를테면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안중근과 어머니의 편지, 한일합방 조약문, 6·25전쟁 휴전 협정문, 서울대학교 문리대 4·19 선언문, 5·16 혁명공약, 10월 유신 선언문,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 외, IMF 구제금융 요청, 노무현 대통령 유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문 등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지윤은 이 책에 실은 '시와 역사'란 글에서 "'미학적인 동시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시의 존재와 지금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에 대해 모색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썼다. 이성혁 외 지음/문화다북스/384쪽/1만 6000원.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