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 조선 시대 백성들 소고기 잔치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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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김동진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소는 부와 권력을 가져다주는 신성의 대상인 동시에 가장 선호하는 탐식의 대상이었다. 그 시대 소고기는 생각보다 귀하지 않았다. 부산일보DB

지금도 소고기는 비싼 음식이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때도 그랬다. 소위 '니밥에 괴기국'이란 말은 이분들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말이다. 여기서 '니밥'이란 쌀밥이고, '괴기국'이란 소고기로 끓인 국이다. 매일 먹고 싶었지만, 먹을 수 없었기에 '니밥에 괴기국' 먹는 게 소원이자 희망이었다. 이처럼 20세기 한국인 대다수에게 '니밥에 괴기국'이란 살아서 마음껏 먹을 수 없고, 홀로 먹을 수 없던 그런 음식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이 괴기국을 맘대로 먹을 수 있었을까?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소는 부와 권력을 가져다주는 신성의 대상인 동시에 가장 선호하는 탐식의 대상이었다. 나라에서 신성시되고 농사짓는 소로 활용하며 귀한 대접을 받던 소는 어떻게 한국인의 식탁에 오르게 되었을까?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는 조선의 역사와 문화, 삶에 깊숙이 개입한 음식인 소고기를 다각도로 살펴본 책이다. 소고기를 통해 조선의 사회상을 엿보는 것은 덤이다.

대접받는 동물이자 탐식의 대상
우금령 내릴 정도로 소 도축 잦아

소고기로 치료하는 병 이야기 등
이색적이고 재미난 시대상 담아


다소 놀라운 것은 조선시대에도 소고기가 생각보다 귀하진 않았다는 것.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조선 숙종 2년(1676), 당시 생활상을 보면 당시 국가에서 도축하는 소는 하루에 1000마리를 넘었다. 영조 51년(1775)에는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 도축한 소만 해도 2만~3만 마리에 이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농업을 근본으로 하던 조선시대. 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였다. 소 한 마리의 노동력을 사람이 대신하려면 적게는 다섯에서 많게는 십여 명까지 달라붙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집안에 소가 몇 마리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졌다. 동시에 소는 조선에서 탐식의 대상이기도 했다. 귀한 가축인 소를 수시로 잡아 잔치를 벌이고, 인구가 1500만 명밖에 안 되는 17세기 후반에도 하루에 1000여 마리씩 도축했다. 나라에서 수시로 우금령(牛禁令)을 내려 소 도축을 엄격히 단속했음에도 조선 사람들의 소고기 사랑은 그칠 줄 몰랐다.

소 사육이 늘고, 소고기 식용이 일상화되면서 부위별로 소고기를 사용하는 법이 실록에 기록될 정도였다. 특히 연산군은 소고기의 다양한 부위를 먹은 인물로 이름을 날렸다.

소고기는 국왕부터 백성까지, 조선 사람들의 삶 속 어디에나 있었다. 임금이 되려는 자, 임금을 대리하는 자, 임금은 반드시 소고기를 먹었다. 소고기는 국왕 품격의 상징이기도 해서, 나라의 허락 없이 소고기를 먹는 자는 왕위 찬탈을 모의하는 반역자로 판단해 벌을 내리기도 했다. 명종 때 박세번이란 인물은 왕이 즉위한 초기에 사직동에 사는 무인들과 작당하고 소를 잡았다가 '반역의 흔적이 있다'는 이유로 처단되었다.

소고기를 가장 많이 잡아먹는 이들은 누구였을까? 대체로 양반 사대부들이었다. 이들이 소고기를 즐기는 계기는 공부로 지친 몸을 튼튼하게 하려고 나라에서 소고기를 먹인 데서 출발한 것이기도 했다. 특히 엘리트 집단인 성균관 유생들에게 빠질 수 없는 일상의 먹을거리였다. 성균관 유생들은 공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소고기로 달랬다. 나라에서도 그들이 소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특별히 신경을 썼을 정도. 서울 도성 내에 유일하게 소 도축을 허가한 장소가 바로 성균관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백성들도 소고기를 배불리 먹었을까? 흔히 임금과 사대부들은 소고기를 배불리 먹었어도, 가난한 백성들은 쉽게 즐기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상식과 다르게 역사는 백성들 역시 소고기 잔치를 열기 바빴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던 제사에 언제나 소고기를 올렸고, 설, 단오, 추석, 동지 등 명절마다 소를 잡아 소고기를 마음껏 즐겼다.

상한 고기 맛을 돌려놓는 방법, 평범한 음식을 비범하게 만든 소고기 양념, 소고기로 치료하는 병 이야기도 눈길이 간다. 소고기는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는 약이기도 했다.

책은 술술 읽힌다. 소와 소고기를 통해 본 조선의 역사와 문화, 그 접근 방식이 이색적이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 김동진 지음/위즈덤하우스/264쪽/1만 5000원.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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