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재발견 '마을미디어'] 소소한 '동네 소식' 전했더니 공동체가 '꿈틀' 뒤따라왔다
'지금은 마을 미디어 시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뉴스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명 인사 이야기도 없다. 주인공은 마을에 사는 평범한 이웃들. 그들의 소소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깡깡이예술마을 '만사대평'
수리조선소 밀집했던 영도 대평동
마을 변화상·주민 일상 담은 신문
경남 창녕 우포늪 '우포데이'
13명 주민이 만드는 라디오 방송
자연의 소리도 담는 따뜻함 지향
먼 나라 소식은 알아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는 모르는 시대. 소소한 우리 동네 이야기를 담았더니 웬일로 공동체가 꿈틀거렸다. 스쳐 지나던 마을 풍경이 하나하나 소중해지는 마을의 재발견. 마을은 정겨운 일상으로 거듭났고, 사람들은 따뜻한 공동체의 일원이 됐다.
종편부터 케이블까지 방송 채널이 넘쳐나고, 유튜브엔 재미있는 짤 영상이 속속 올라오고, 페이스북으로 세상 소식을 다 알 수 있는 시대. 숨 가쁜 SNS 시대에도 '마을 미디어'가 건재하고, 나날이 더 절실해지는 이유다.
■'만사대평' 대평동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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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영도구 깡깡이예술마을 신문 '만사대평'을 발행하는 만사대평 기자단. 만사대평 제공 |
매월 타블로이드 8면으로 발행되는 마을 신문. 쉽지 않은 이 일을 대평동 열혈 주민 기자 4명이 꼬박꼬박 해내고 있다. 만사대평 하은지 편집위원은 "수리 조선소가 밀집해 있던 깡깡이 마을 대평동의 의미와 가치를 새삼스럽게 일깨우고, 마을의 오늘을 차곡차곡 기록하는 데 마을 신문만 한 매체가 없다"고 말했다.
대평동은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 마을 기자단은 계속 바뀌고 있는 마을의 변화상을 제대로 담기 위해 힘들지만, 월간 발행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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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대평' 편집회의. 만사대평 제공 |
예전 수리 조선 1번지 대평동은 기술자들의 마을이기도 했다. '만사대평'은 평생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깡깡이 아지매, 수리 조선소 도크마스터, 부품 수리 기술자, 선원들의 쉼터 양다방 사장님 등 대평동 평범한 이웃의 담담한 삶을 담아냈다. '대평동 용어사전'은 마을 주민들이 간판으론 수없이 보며 지나쳤지만, 용도나 쓰임새는 알지 못했던 수리 조선 관련 부품(아연판, 벨로우즈) 등을 친절하게 설명한 코너. 마을의 아쉬운 점을 취재해 '대평동에 부족한 두 가지, 조명과 벤치' 기사를 싣기도 하고, 부산지역 또 다른 도시재생 마을을 탐방하는 '주민 기자가 간다' 기획 시리즈도 실었다.
하 위원은 "예전엔 스쳐 지나던 마을의 소소한 것들이 마을 신문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면서 마을 어르신들이 '깡깡이마을을 정말 좋아하게 됐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우포늪의 자연과 사람 이야기 '우포데이'
'우포데이'는 경남 창녕군 우포늪 일대 세진, 주매 마을 등을 아우르는 마을 방송. 생태해설사, 농민, 도예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마을 주민 13명이 우포늪 마을방송 '우포데이' 회원이다.
지난해 여름부터 영상뉴스 제작 등을 고민하던 회원들은 마을 주민들이 좀 더 보편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목소리만 나오는 편한 매체' 라디오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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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데이' 보이는 라디오 진행 모습. 우포데이 제공 |
우포늪 주변의 보물 같은 이야기들을 라디오로 알릴 수 있다는 흥분에 마을 공동체가 들썩였다. '우포데이' 녹음파일은 유튜브에 올라 있다. '우포데이'는 올해 우포늪 탐방객들을 위해 마을 주민들이 들려주는 우포 이야기와 우포늪 생태 해설을 스마트폰 앱으로 만드는 작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라디오로 이웃 이야기를 전하는 부산지역 마을 미디어는 수영구 '팔도 라디오', 부평동 '깡통시장 라디오', 동래구 수안동 '동래FM 얼쑤청바지' 등이 있다.
■소소한 이야기, 소통의 매개가 되다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와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해 12월 마을 공동체를 위한 특별한 축제 '2017 마을미디어 축제'를 열었다. '마을의 소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소통의 매개체' 마을 미디어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마을미디어 축제 '사례 발표회'에는 쇠미골소리샘 주민기자단(동래구 사직동 신문) 수민동락(동래구 라디오) 만사대평 반반미디어(해운대구 반송동 미디어) 사하배움마당(사하구 신문) 우포데이가 참가했다.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마을미디어연구소 정수진 소장은 "중앙집권적 획일적 사회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해결할 답은 결국 작은 공동체"라며 "작은 공동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 마을 미디어는 반드시 필요한 매체"라고 강조했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서로 소통하려면 마을 미디어와 지역 미디어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민언련은 마을미디어지원조례 제정을 추진 중이다. 정 소장은 "마을 미디어 활성화는 재정 지원 등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마을 미디어가 공동체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은 특히 자생적 마을 미디어가 많은 지역. 정 소장은 "올해는 좀 더 성장하고 싶은 마을 미디어들이 함께 고민을 나누고 힘을 모을 수 있도록 마을 미디어 네트워크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승아 선임기자 se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