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부산 공공케어 보고서] 1부 증상 : 결핍 & 불균형 5. 치과적 장애인 '구강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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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사벽' 치과 앞에서 이 아파도 입술만 깨문다

'부산권장애인구강진료센터'에서 의료진들이 선천적 장애가 있는 서영준 씨에게 전문 칫솔질을 해주고 있다. 김병집 기자 bjk@

할머니는 건물 계단에 걸터앉아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아파서 서러운 게 아니라 접수도 못 해보고 '병균' 취급을 당한 게 슬퍼 울었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들은 아픈 이를 움켜쥐고 엄마만 바라봤다. 강서구부터 기장군까지 부산에 있는 치과 대부분을 찾아갔으나 퇴짜를 맞았다. 할머니는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치아 관리 어려운 지적장애인
치료 절실해도 병원 되레 외면
돌발 행동 잦고 수익 적은 탓

부·울·경 유일 전문 치료기관
부산권역장애인구강진료센터
예산 부족에 의사 2명 고작
구강 공공의료 체계 확대 절실

■장애인에게 치과는 '넘사벽'


지적장애 1급 아들을 둔 오정숙(73·여) 씨는 서러웠다. 선천적 장애를 가진 아들 서영준(37) 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윗니와 아랫니가 하나도 닿지 않을 정도로 이가 썩거나 부러져 있었다. 인스턴트커피, 탄산음료 등에 중독된 탓도 있지만, 칫솔질할 수 없는 게 근본 원인이었다. 서 씨는 양치질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지적 장애인이다. 칫솔질을 위해 턱을 억지로 벌리려고 하면 엄마의 손을 마구 깨물었다. 치약과 가글은 그대로 삼켜버렸다.

오 씨는 매일 밤 턱을 부여잡고 끙끙 앓는 아들 손을 붙잡고 부산, 경남 일대의 치과병원을 수도 없이 찾았다. 하지만 돌아온 건 문전박대. 성인들도 꺼리는 치과 진료를 지적장애인들이 버텨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소리를 지르는 등 돌발행동을 하기 일쑤다. 시간과 노력에 비교해 수익은 터무니없이 낮은 장애인 치과 진료를 달가워하는 민간 병원은 없었다.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눕힌 치과진료대에서 긴장한 나머지 서 씨가 대소변을 지리는 일도 있었다.

평생 충치와 함께 살아온 서 씨가 제대로 된 치과 진료를 받게 된 건 지난해 '부산권역장애인구강진료센터'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2011년 25억 원의 정부지원금을 받아 설립된 이 센터는 전신마취를 통해 중증장애인들의 치과 진료를 전담한다. 서 씨는 이곳에서 입원과 통원을 반복하며 1년간 22개의 치아를 뽑은 뒤 현재 임플란트 시술을 받고 있다.

부산대병원 산하의 이 센터에는 서 씨와 같은 지적장애인을 비롯해 지체장애인, 뇌병변장애인 등 한 해 6000여 명의 환자가 찾아와 진료를 받고 있다. 부산뿐만 아니라 권역장애인구강진료센터가 없는 울산과 경남지역에서도 환자들이 몰리는 상황이지만,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의사는 2명밖에 없다. 중증장애인들이 진료를 보기 위해 필요한 전신마취를 받기 위해서는 3개월씩 대기해야 할 정도로 환자가 밀려 있다. 부산의료원이 운영하는 장애인치과센터와 행동하는 의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등 일부 뜻있는 의사의 자선활동을 제외하고는 중증장애인들이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없다.

부산권역장애인구강센터 오형진 센터장은 "중증장애인들의 구강 건강 상태는 일반인들과 달리 입안의 치아를 몽땅 들어내야 할 정도로 악화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환자들을 감당해내기 위해서는 지역 곳곳에 구강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의료 체계가 더욱 촘촘하게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 센터장은 또 "경증장애인의 경우 동네 치과에서도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센터를 찾기도 한다"며 "나이 기준(만 65세 이상)으로 된 임플란트, 틀니 건강보험을 장애 기준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남 일 아닌 '치과적 장애인'

의료계에서는 '치과적 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종종 사용한다. 스스로 구강위생 관리를 하지 못하는 사람을 통칭해 일컫는 말이다. 구강 보건 문제를 지적장애인 등 특수계층으로 한정해선 안 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도 누구나 치과적 장애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직장인 박 모(50) 씨는 1년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이는 어머니 최 모(85) 씨를 모시고 산다. 입원할 정도로 치매 증상이 심각하지 않았고 때때로 정상인과 다름없이 행동하지만, 문제는 몇 달 전부터 어머니가 양치질에 극도로 두려움을 느낀다는 데 있다.

최 씨에게 양치질을 시키는 건 전쟁과도 마찬가지다. 가족 2~3명이 달라붙어 손발을 붙잡고 입을 간신히 벌려야 칫솔질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최 씨의 양치질 횟수는 점차 줄어들게 됐고, 치아 건강이 염려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박 씨는 "재갈을 물려서라도 양치를 해드리고 싶은데 본인이 자꾸 거부하니 너무 힘들다"며 "고령의 어머니에게 전신마취가 필요한 치과 진료를 받게 할 수는 없는데 걱정이다"고 말했다.

중앙치매상담콜센터 관계자는 "과거에 이가 아팠던 경험이 떠올라 치매 환자들이 양치질이나 치과 진료를 극도로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강제로 칫솔질을 시키는 것보다 가족들이 시범을 보이며 양치질을 스스로 하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 광역 단위의 치매센터에 연락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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