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리말사전' 출간 최상윤 소설가·문학평론가 "말은 나라의 혼, 순우리말 잘 보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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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춤하다, 안쫑잡다, 잔망스럽다, 곽쥐, 하제….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없는 낯선 단어들이 모두 순우리말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흩어진 순우리말을 모아 6년간에 걸친 작업 끝에 <순우리말사전>(동아대학교출판부)을 펴낸 이가 있다. 동아대 교수를 지내며 12년간 한국예총 부산시연합회(부산예총) 회장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예술단체 활동을 펼쳤던 최상윤(78)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다.

동아대 교수 이어 예술단체 활동
교정 4차례, 제작에만 6년 걸려

그가 순우리말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38년 전인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부독재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던 수필과 소설로 국가 반란음모 혐의를 받으면서 절필 아닌 절필을 하게 된 그는 동아대 학내 소설창작회 소속 학생 16명과 함께 순우리말을 모으기 시작했다. 컴퓨터는 물론 복사기마저도 없던 그 시절, 학생들은 각자 찾아낸 단어들을 노트에 빼곡하게 적고 등사기로 찍어 이를 모아냈다. 한자 말과 보편화된 우리말을 제외한, 그야말로 알알이 숨겨진 귀한 순우리말을 찾는 작업은 무려 10년간 계속됐다. 이렇게 모인 순우리말은 어느새 두툼한 노트 여러 권이 됐다. 최 평론가는 "학생들에게 영어 단어 외우듯 우리말을 읽고 쓰게 했다. 그 학생들이 이후 종합일간지 신춘문예에 잇따라 당선되고 신문사 기자가 됐다"고 웃음 지었다.

1990년대 들어 부산문인협회와 부산예총 회장을 맡는 등 다양한 예술단체 활동에 나서면서 순우리말 수집을 중단했던 그가 다시 순우리말에 주목한 것은 2012년. 회장직에 물러난 뒤 그동안 발간된 문학 작품을 훑던 중 순우리말을 잘 쓰는 문인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아 실망하면서부터다. 보관 중이던 순우리말 모음집을 문인들과 공유하기로 하면서 책의 형태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교정만 무려 4차례. 사전마다 단어 해석이 다른 경우 고서 전공자에게 자문을 얻어 좀 더 명확한 뜻을 실으려고 노력하는 등 제작에만 6년이 걸렸다. 그의 제자이기도 한 하주희 소설가와 정지영 씨가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548쪽에 달하는 책은 셀 수 없이 많은 순우리말과 정확한 뜻은 물론 비표준어 여부까지 알려주고 있다. 밥과 육류를 비롯해 잠, 시간, 계절, 바다, 남녀관계, 어린이 등과 관련된 순우리말과 유용한 관용구로 구성된 부록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최 평론가는 순우리말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예컨대 '도부치다'의 경우 지금은 지방어가 되는 등 상당수 우리말이 비표준어가 되고 말았다. 그 나라의 문화 척도가 어휘 수라는 점에서 비표준어가 늘어나는 게 좋은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 평론가는 "일제강점기 때 우리 선조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한 우리말을 지금 후손들은 스스로 없애고 있다. 순우리말이 점점 사라져 안타깝다"며 "말은 그 나라의 혼인 만큼 후손들에게 혼이 전해질 수 있도록 글 쓰는 사람들이 우리말을 잘 알고 작품으로 남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 교육 과정에도 순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반영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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