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원의 영화와 삶] 디지털 시대에 옛날 영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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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비고의 '라탈랑트'.

이제 우리나라에서 필름으로 영화를 트는 곳은 단 두 곳밖에 없다.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관과 서울아트시네마. 이 두 극장은 동시대 상업영화만을 다루는 멀티플렉스와 달리 무성영화부터 동시대 실험영화까지 거의 모든 범주의 영화를 회고전, 특별전, 기획전의 이름으로 우리 앞에 불러낸다. 수십 년 전에 만들어져 전 세계 아트하우스를 돌고 돌아 한국의 시네마테크까지 오게 된 그 영화 중에는 먼지 앉고 구겨지고 잘려나간, 온갖 흠집을 제 몸에 아로새긴 닳고 닳은 필름도 꽤 있다.

모든 극장이 디지털 상영으로 전환된 지 몇 년, 이제 우리 눈은 스크린 위 티끌만 한 흠집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영화가 언제나 그렇게 햇볕처럼 쨍한 이미지였던 양, 안개 낀 듯 몽롱한 필름의 화질을 못 견뎌 한다. 디지털 상영이 상업적으로 안착되자마자 필름으로 촬영하는 영화도 빠르게 사라져갔다. 이제 필름으로 작업하는 감독은 거의 없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덩케르크'처럼 가물에 콩 나듯,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희귀하게 필름으로 찍은 영화도 결국 디지털 영사로 보게 된다. 필름 영화의 우위를 주장하는 건 아무런 근거도 없는, 그저 향수에 지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옛날 관객인 나는 아직도 극장 영사실의 35㎜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와 그 빛에 애착을 버리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필름 프린트에서 나온 그 무겁고 깊고 불투명한 질감이 좋다.

국내 필름 영화 볼 수 있는 곳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관 두 곳
15년째 월드시네마 기획전서
재발견 섹션 10편 중 7편 디지털

몽환적 이미지 가득 '라탈랑트'
디지털 복원해 지나치게 선명
기술이 예술 구원 못 함이 분명

매년 벚꽃이 필 무렵, 시네마테크에선 '월드시네마' 기획전이 열린다. 올해로 15번째다. 여기서도 이제 필름보다는 디지털 상영이 더 많아지고 있다. 시네마테크에서 소개되는 세계영화사의 걸작들은 국제적인 극장 순례로 낡을 대로 낡아 시급한 복원을 필요로 하고, 복원될 때 그 필름들은 예외 없이 디지털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세어 보니, 올해 월드시네마 '재발견' 섹션의 10편 중 7편이 디지털 상영이다.

거기서 장 비고의 '라탈랑트'(1934)를 다시 보는데, 너무 좋은 화질에 놀랐다. '지나치게' 선명한 해상도에 내 눈이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말이다. 그 화질이 지나친 까닭은 '라탈랑트'는 밤과 물과 달의 영화고 무엇보다 안개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의 '라탈랑트'는 몽환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눈을 크게 뜨고도 꿈을 꾸게 하는 영화였는데, 이번에 상영한 2017년에 재복원된 4K(HD의 4배 이상의 초고화질 영상) 디지털 버전의 '라탈랑트'는 그게 꿈임을 각성시키는 영화로 느껴졌다. 분명 예전에 보았던 것과는 좀 다른 체험이었다.

1934년 당대 관객들은 우리가 본 '라탈랑트'와는 전혀 다른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20분을 잘라내고 영화 제목도 당대 유행가 제목으로 갈아 치운 제작사 버전의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흥행에서 참패하고 그해 장 비고는 2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라탈랑트'는 그의 유일한 장편영화이자 유작이다. 그 후 이 영화의 첫 번째 복원판은 디지털이 등장하기 이전 시기인 1990년에 나왔다. 장 비고가 구현한 애초의 비전을 본 첫 관객은 1990년 이후의 우리들인 것이다.

강과 밤과 달과 더불어 안개는 초현실적이고 시적인 '라탈랑트'의 무드를 관장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다. 여기서 안개는 꿈이고 사랑이고 현실 저 너머의 세상이다. 4K 디지털은 그 안개를 그저 안개로 만들어 버렸다. 바보 같은 말이지만, 모든 영화가 고해상도의 선명한 화질이어야 할까? 더 좋은 화질을 마다할 관객이 있을까마는 더 나은 화질이 더 나은 관람체험을 보장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아무래도 괜한 아집이거나 기분 탓이겠지만 이건 분명하다. 기술이 예술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강소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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