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부산 공공케어 보고서] 1부 증상 : 결핍 & 불균형 3. 노숙인 분장해 병원 찾았더니…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아무리 아파도 신원 불확실하면 치료커녕 문전박대

지난달 본보 기자는 2시간 여의 특수분장 끝에 노숙인으로 분장해 부산지역 보건소, 공공협력병원, 종합병원 응급실 등을 직접 찾았다. 신분증 없는 노숙인에게 돌아온 건 진료거부와 냉대뿐이었다. 기자는 결국 시민단체 관계자의 도움으로 병원문을 나서야만 했다. 김병집 기자 bjk@

'140여 명.' 부산시가 추정하는 노숙인 수이지만 실제론 훨씬 많은 이가 거리에 산다. 사회 밑바닥 계층인 만큼 건강 상태가 최악이지만 노숙인 3명 중 2명은 아파도 진료를 포기한다. 가장 치료가 필요한 이들은 왜 병원을 기피하게 됐을까. 직접 노숙인이 돼 병원으로 향했다. 의문은 곧 풀렸다. 본보 기자가 하루 동안 체험한 결과, 거리와 병원 사이엔 노숙인에게만 보이는 차갑고 두터운 '벽'이 있었다.

부산 시내 병원 3곳 돌며 고통 호소
보건소 포함 병원 3곳 다 진료 거부
몸 상태보단 신원 확인에만 관심
병원 관계자 "경찰 부르자" 목소리도

■병원 문턱을 못 넘다

'쩐내'가 코를 찔렀다. 술에 절인 옷과 막걸리로 '샤워'한 몸에서 나는 냄새다. 2시간여의 특수분장을 끝내고 거리로 나섰다.

보건소 문을 열고 대기 의자에 앉자 옆자리 사람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대기표를 뽑자 치한이라도 본 듯 직원이 다가왔다. "신분증 있으세요? 이전에 보건소 온 적 없으면 진료가 안 되는데…." '어디가 아파서 왔냐'는 말이라도 기대했건만 직원은 신분 확인용 '진료의뢰서'를 받아오라는 안내조차 하지 않았다. "배가 너무 아파서 왔는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라고 먼저 용무를 꺼내자 다짜고짜 "개인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보건소에 들어왔다 다시 거리로 쫓겨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분. '보건소가 안 되는데 개인 병원이라고 될까.' 억울함이 목 끝까지 치밀었다.

"저런 사람 경찰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보건소 다음으로 찾은 '공공의료협력병원'. 저소득층 의료서비스를 강화하겠다며 부산시가 지정한 병원이지만 신분증이 없다고 하자 의사 대신 경찰 얘기가 먼저 튀어나왔다.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웅성대기 시작했다. 안 아파 보여서일까. 배를 부여잡고 "간단한 약이라도 받을 수 있게 진료해 달라"고 읍소했다. 접수대에서 나온 직원은 단호한 어조로 "경찰서에 가서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신분 확인이 안 되면 아무리 아파도 진료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런 병원이 아닙니다." 또 다른 종합병원. 야간 응급실은 얼음장처럼 추웠다. 신분증이 없다는 얘기에 돌아온 '그런 병원이 아니다'란 답. 누추한 사람 진료하는 병원은 따로 있는 것일까. 직원은 "우리는 그냥 개인 병원일 뿐"이라며 끝내 의사와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발길을 돌리는 도중 병원 앞에 내걸린 부산시 지정 '공공협력병원'이란 명패가 눈에 밟혔다. 10시간에 걸친 병원문 두드리기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분장을 한 꺼풀만 지웠다면 누더기 하나만 벗었다면 겪지 않았을 차별, 받지 않았을 냉대다.

■"아프면 참고 말지요"

보건소부터 동네 의원, 종합병원까지. 노숙인에게 진료실 문턱은 하나같이 높다. 본보 취재진이 사회복지연대, 동구 쪽방상담소와 함께 한 달 동안 거리에서 만난 노숙인들은 '병원' 얘기만 나와도 손사래를 쳤다.

밤늦게 부산역 2층 대합실에서 만난 노숙인 김진아(가명) 씨는 연신 코를 훌쩍이면서도 병원 얘기엔 "아이고 안 갈란다. 가믄 온갖 거 다 물어 쌓고 올케 봐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노숙한 지는 2년쯤. 작은 침낭에 기댄 채 입속으로 주먹밥을 욱여넣는 김 씨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할매, 병원 함 갔다 오면 훨씬 나을 건데…." 간간이 미소를 보이던 김 씨는 끝내 병원행을 마다했다. 핫팩 몇 개와 편의점에 파는 감기약을 주머니에 넣어드리는 게 전부.

며칠 뒤, 다른 노숙인 반응도 비슷했다.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허리야." 부산역 2층 식당가 앞에 잠자리를 편 이진애(가명) 씨는 연신 끙끙댔다. 돌아눕기가 어려운지 이틀째 같은 자세로 누워 있었다고 했다. "링거 한 대 맞고 오시죠"라는 말을 들은 채 만 채 이 씨는 "핫팩이나 하나 더 줘"라며 빼앗듯 허리춤 속으로 감췄다.

노숙인들은 모두 감기를 기본으로, 허리와 다리 통증을 호소했다. 추운 거리에서 얇은 모포와 침낭으로 버티는 이들에겐 당연한 병이다. "가까운 병원 잠깐 다녀오시죠." "링거 맞고 엑스레이만 한 번 찍어보시죠." 끈질긴 설득에도 돌아온 건 '단호한 거절'이었다.

중요한 건 노숙인 스스로는 '치료가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부산지역 주거 취약계층 실태조사를 보면 '최근 1년간 진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병원에 가지 못한 경험이 있다'(미충족 의료경험률)고 답한 노숙인은 140명 중 절반(48.4%)에 달했다. 일반 국민의 미충족 의료경험률(12.0%)보다 4배나 높다. 또 3명 중 1명은 '노숙하는 동안 질병 치료를 포기한 적 있다'고 답했다.

동구 쪽방상담소 이재안 실장은 "보통 노숙인들은 병원에 가면 자신의 신상이 드러나고 냉대를 받기 일쑤여서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제 발로 병원에 가려 하지 않는다"며 "기초수급자인 경우 의료비 지원이 되는데도 아픈 걸 그냥 참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