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그 커피, 마시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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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는 동료 의원의 공격에 난감해하던 링컨이 말했다.

"거참, 내가 얼굴이 두 개라면, 오늘 같은 중요한 자리에 왜 이 못생긴 얼굴을 갖고 나왔겠습니까?"

널리 알려진 유머다. 사실 정치인에게 유머는 있으면 좋은 덕목이 아니라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이다. 정치 선진국일수록 더욱 필요한…. "대통령으로는 나이가 좀 많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제40대 미국 대통령 자리를 놓고 맞붙은 먼데일 민주당 후보의 공격에 레이건은 사실상 승리를 거두는 이런 유머를 던졌다.

"저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이슈로 삼지 않겠습니다. 상대방이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유머가 없지 않았다. "꼭 돼지같이 생겼소"라는 조선 태조 이성계에게 무학 대사는 이렇게 받았다. "제 눈에는 전하가 부처처럼 보입니다만….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지요."

상대를 아프게 하면서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유머는 설득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반감만 일으키는 거친 표현은 고수의 수단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치는, 그야말로 '말로 하는 예술'이 아니던가.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통상 압력에 당당하고 결연하게 대응하라'고 하자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은 이랬다. "이거 대통령 정신 나가셨나." 같은 당 여상규 의원은 얼마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법원장이란 작자가 사법부에 대한 모욕적인 말을 듣고 왜 한마디도 안 하나."

역시 같은 당이라서 공교롭지만,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울산시장 측근 비리를 수사 중인 경찰에게 "경찰이 정신 줄을 놓고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닥치는 대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정권의 사냥개가 광견병에 걸렸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들이 들을까 봐 살짝 신경이 쓰일 정도의 표현인데, 경찰이 '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 돼지 눈에 돼지, 부처 눈에 부처)'이라고 무학 대사처럼 의젓하게 반박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면 역시 말이나 글에 '대안, 품격, 유머' 가운데 하나는 있는 게 좋아 보인다. 영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 낸시 애스터가 논쟁 중에 "윈스턴 씨, 만일 당신이 제 남편이라면 당신 커피에 독약을 넣을 거예요!"라고 하자 처칠이 웃으며 답했다.

"부인! 만일 제가 당신 남편이라면 저는 기꺼이 그 커피를 마실 겁니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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