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스크린산책]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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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장식 없는 첫사랑의 담백한 모습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소니픽쳐스 제공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은 눈부신 이탈리아 남부, 고풍스런 가족 별장에서 열일곱 살의 '엘리오'(티모시 샬라메)는 '올리버'(아미 해머)를 만난다.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별장에 머물게 된 올리버는 수려한 용모와 남다른 친화력으로 엘리오 가족과 이웃들을 사로잡고, 엘리오도 어느새 그에게 매료당한 자신을 발견한다. 카메라는 오랫동안 올리버를 좇는 엘리오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는 올리버가 누워 있던 자리, 그가 운동을 하고, 그가 책을 읽던 자리를 끊임없이 바라본다. 그 시선 사이에는 나무, 하늘, 바다 등 자연과 그 일부인 인간들-가족과 이웃들-밖에는 없다. 엘리오에게 누구의 해석도 들어가지 않은 오리지널 바흐의 곡을 연주해달라던 올리버의 부탁처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은 스스로 아무 장식도 없는 사랑의 담백한 모습을 추구한다. 심지어 이들에게는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와 달리, 눈에 띄는 훼방꾼도 없다. 예정된 이별의 순간까지 오직 사랑의 설렘, 교감, 긴장과 행복, 그리고 슬픔이 러닝타임을 충만히 적시다가 기어이 넘쳐흐른다. 역사, 미술, 문학, 음악 등에 관한 인물들의 지적인 대화 또한 일련의 감정들을 담아낸 그릇일 뿐이다. '순수'를 표현하는 특별하고 세련된 방식이 첫사랑의 풋풋하고도 아찔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소환해낸다.

'순수'를 표현하는 특별한 방식
풋풋하고 아찔한 감정 소환해 내


'순수'라는 맥락에서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은 무엇으로도 포장되지 않은 자아를 찾아 인정하고 드러내는 과정과도 결부된다. 엘리오는 어머니가 읽는 독일 로맨스 문학의 주인공처럼 모든 것을 망쳐버릴지도 모르는 사랑 고백을 '하는 게 나을까? 죽는 게 나을까?'하는 치열한 고민 끝에 올리버에게 마음을 전하는 한편, 올리버를 따라 유태인의 별 목걸이를 하면서 자신의 뿌리를 드러낸다. 두 사람이 큰 소리로 서로의 이름을 바꾸어 부르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에 당당히 밝히겠다는 의지적 행위이기도 하다. 엘리오의 아버지가 고전을 연구하는 학자라는 점, 그가 아들에게 함부로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단 한 번 야단치는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엘리오는 편견 없이 아들의 성정체성을 인정해주는 훌륭한 아버지를 통해 기쁨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슬픔도 포함된 사랑의 실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토록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별장에도 눈이 내릴 즈음, 엘리오는 다시 올리버와의 추억을 되새긴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분주한 테이블을 배경으로 클로즈 업 된 티모시 샬라메의 얼굴은 감정의 성찬(盛饌) 같다. 눈 내리는 소리까지 잡아내는 섬세한 연출력과 풍성한 감수성이 봄날의 햇살처럼 마음을 간질이는 작품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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