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영화는 무책임한 사회적 배설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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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등장하는 영화 '나쁜 남자'.

범시민단체 '영화네트워크 부산' 창립에 앞장서고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이 되는 등 영화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시네페미니스트 1세대' 주유신(영산대 교수) 영화평론가. 그가 지난 2006년부터 최근까지 써온 글을 모아내 출간한 <시네페미니즘>(호밀밭)은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시네페미니즘>(호밀밭)을 펴낸 주유신 영화평론가의 시선은 깊고도 예리하다.

SNS를 중심으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며 우월적 지위를 기반으로 성범죄가 무시로 벌어지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미투(#MeToo)' 운동이 활발함에도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이 여전한 지금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여성의 시각으로 영화를 읽는 13가지 방법'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496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은 영화를 중심으로 페미니즘의 역사와 흐름을 짚어내는 동시에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왜곡되는 여성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성의 눈으로 영화보기'를 시작으로 1990년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성 담론과 관련한 서구 페미니스트의 성 정치학, 1000만 관객 시대를 맞아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 보이는 일관되고 배타적인 남성성을 비롯해 민족, 근대성, '위안부' 피해자 등과 같은 거대담론은 물론 멜로, 공상과학, 포르노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그저 영화를 '보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읽어내야' 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된다.

영화평론가 주유신 교수
최근 출간 '시네페미니즘'서
단호하고 명쾌하게 지적

이론보다 사례 분석 통해
영화에 대한 독자 이해 돕고
위안부·성 소수자 접근 등
이슈에 대한 대안 가능성도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책은 어려운 이론에 치우치지 않고 영화 사례를 통한 분석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최근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나쁜 남자'에 대한 주 평론가의 시선은 단호하고도 명쾌하다. '김기덕의 영화들은 남녀 간의 불평등과 적대성,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육체에 대한 극단적인 공격과 침해를 끈질기게 정당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타자들에 대한 어떤 성찰도 담지 않은 무책임한 사회적 배설 행위에 다름 아니다.' '안티 김기덕의 대표주자'로 꼽히기도 한 주 평론가는 "지난 2005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왜 해외에서 주목받는지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의 영화를 보고 '페니스 파시즘'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는데 미투운동으로 그의 행적이 폭로되니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영화 '귀향'. 부산일보DB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주제로 한 영화 '귀향'과 '눈길'을 통해 본 대안적 역사 쓰기의 등장,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상대적인 연구가 덜했던 1950년대 영화를 통해 새로운 '신여성'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여성주의적 영화 미학의 가능성, 영화 '지상만가'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보다 세심한 접근의 필요성을 제기한 대목은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선을 모은다.

책은 페미니즘과 여성에 대한 진실을 읽어내는 좋은 기회가 되기 충분하다. 주 평론가는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영화는 보수 지향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업성이라는 운명적 측면과 달리 사회문화적 이슈에 주목하면서 급진적인 장르로 나갈 수 있는 것 역시 영화"라며 "묻혀버릴 수 있는 영화를 발굴해내고 영화의 사회문화적 급진성을 드러내는 데 주목했다"고 말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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