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문화 톺아보기] 28. 영도 바다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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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위에서 발견하는 부산의 아름다움

부산 영도 대평동 수리조선소 깡깡이 작업장 모습.

기억 하나.

퐁 네프, 퐁 디에나, 퐁 마리, 퐁 쉴리, 퐁 미라보…. 30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다리들이 센강으로 빨려 들어가듯 스쳐 지나갔다. 마치 바람을 가르듯.

십수 년 전 프랑스 파리를 처음 방문했을 때 '바토무슈' 유람선을 탔던 기억이다. 시간을 되돌려 기억해보니, 센 강변에는 아름다운 건축물이 즐비했다.

가까이는 노트르담 대성당과 오르세 미술관이, 저만치는 에펠탑이 마치 영사기 필름 속 한 장면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센강의 유람선은 기자의 파리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탑처럼 쌓아 올렸다.

기억 둘.

수상 버스를 탄다고 했다. 수상 택시도 있다고 했다. 처음엔 배 위에 차를 얹어 이동하는 줄 알았다. 생각은 단지 상상이었을 뿐.

수년 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비엔날레가 열리던 때였다. 배 모양의 '바포레토'를 타고서야 왜 이걸 수상 버스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베네치아의 대중교통이었고 관광객의 발이었기 때문이다. 돈 많은 관광객은 수상 택시를 이용했다. 수상 버스 위에서 스쳐 지나가는 건축물을 보며 가이드가 설명했다. 산 조르지오 마조레 교회, 산제레미아 성당,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두칼레 궁전…. 마치 물 위를 수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건축물들. 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렸다. 

이탈리아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명물 리알토 다리. 부산일보DB
물(강, 바다)이 있었고, 배와 함께였다. 영원히 잊히지 않는 순간들. 배에서 마주한 낯선 이국의 풍경들. 가끔 마음이 허전할 때, 기자는 그 순간을 다시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곤 한다.

바다나 강이라면, 부산도 그 대열에 빠지지 않을 터. 삼포지향(三抱之鄕·산, 강, 바다를 갖춘 고장)의 도시 부산이 아니던가. 툭 터인 바다와 강(江), 그리고 하천들. 삼면이 바다와 강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부산이다. 예전엔 배가 교통수단일 때도 있었다. 그 옛날 동천(東川)에는 현재의 전포동이 하구(河口)가 되어 배가 드나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배는 우리의 삶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영도구청과 깡깡이예술마을사업단이 '영도 바다 버스'를 추진하고 있다. 과거 영도와 남포동을 오가던 도선을 재현하고 관광객들에게 항구도시 부산의 본 모습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목적이다. 도선은 영도다리가 생기기 전 영도와 육지를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재현될 뱃길은 대평동-옛 다나카 조선소-영도다리-자갈치-공동어시장-대평동을 운행(20분 정도 소요)하는 것으로, 소위 영도 대평동 깡깡이마을 앞 바다에서 배를 타고 수리조선소의 모습과 남항 일대를 둘러보는 것을 그리고 있다. 남항 주변으로는 공동어시장은 물론이고 시끌벅적한 생선 장수의 외침이 정겨운 자갈치 시장이 있다. 송도 방향으로는 알록달록 수많은 냉동창고들이 이어진다. 영도 대평동 쪽으로 선박수리와 도장을 위해 배에 붙은 조개류와 녹을 떼는 '깡깡이' 작업장이 눈에 들어온다. 만약 이게 실현된다면 '영도 바다 버스'는 그 자체로 부산 여행의' 백미가 될 터이다. 항구도시 부산의 그 내밀한 바다 풍경과 삶의 체취를 이 만큼 잘 보여 줄 수 있는 데가 또 어디에 있을까.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남항만이 아니다. 향후엔 동천에도 뱃길이 열렸으면 한다. 물론 수질 개선이 선행돼야겠지만 말이다. 동천 주변에도 부산의 역사와 문화가 숨 쉰다. 동천을 따라 좌우로 부산시민회관, 문현금융단지는 물론이고, 아시아 최고 목재회사였던 동명목재, 수많은 신발공장의 역사가 펼쳐진다. 지금의 삼성그룹을 있게 한 모기업인 제일제당도 동천 가에 있었다.

안에서 보는 부산과 배를 타고 밖에서 보는 부산은 아주 다르다. 길은 꼭 땅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바다에도, 강에도 있다. 부산의 자산, 부산의 문화관광 자원, 부산의 미래 가치 역시 천혜의 해안, 하천가에도 있다.

부산의 남항이나 동천이 프랑스 파리의 센강이나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수로처럼 문화관광 자원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깡깡이예술마을사업단의 '영도 바다 버스' 추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게 '바다 버스'라 해도 좋고, '바다 택시'라 해도 좋다.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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