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가 바꾼 사회] 미투에 반발 '펜스 룰·명예 남성' 2차 피해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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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인 8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열린 부산지역 여성단체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미투 운동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상징하는 하얀 장미를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문화계, 예술계, 정계까지 3개월째 휘몰아치고 있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일상에도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부산 강서구 한 제조업 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는 A(35·여) 씨는 최근 들어 '커피 심부름'을 하지 않는다. 올해 초부터 미투 열풍이 불자 사장이 공식 석상에서 "우리 회사부터 경리한테 커피를 부탁하는 문화를 없애자"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회사에 손님이 왔을 때 여성이 커피를 타주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는 인식 자체가 여성에게 폭력적인 문화라는 인식에서다. 부산의 한 구청 과장은 "올해는 회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부분이 여성 직원인 과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회식을 하고 흥에 겨워 노래방까지 갖던 것이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여성과 말조차 안 섞겠다"
일부 남성 '여성 배척' 현상
여성 스스로 "미투 안 한다"
배척 피하려 '명예 남성' 선언

"성폭력 민감성 키우자는
미투 운동 취지 명심해야"

부산의 한 중소기업은 자체적으로 사내 '성폭력 조사'에 나섰다. 조사는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외부 법무법인을 섭외했다. '종전에', '올해', '최근' 같은 기간을 특정하지 않고 입사 이후 어떤 일이든 확인이 되면 일벌백계하겠다는 취지라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한국 여성의전화는 서지현 검사가 미투를 외친 뒤 지난 6일까지 성폭력 피해 관련 초기 상담이 100건 접수됐다. 전년도 동기간보다 23.5% 증가한 수치다. 성폭력 피해 상담 100건 중 28건에서는 미투 캠페인이 직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부산 여성의전화에도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부산 여성의전화 관계자는 "혼자 잊고 지내려던 분들이 미투 운동 이후 용기를 내 전화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미투 열풍이 사회 곳곳의 성추행, 성폭행 그을음을 걷어내고 있지만 반발심에 '여성과 말조차 섞지 않겠다'며 펜스 룰로 미투에 대처하는 남성도 등장했다. 펜스 룰은 미국 펜스 부통령이 부인 이외에 여성과 따로 식사를 하거나 술을 하지 않겠다고 공표를 한 데서 비롯됐지만 한국에서는 아예 말도 섞지 않겠다며 '여성 배척' 양상까지 보이기도 한다.

여성 배척 문화가 생기자 일부 여성들은 아예 자신은 남성과 같다며 '명예 남성'을 자처하기도 한다. 술자리, 회식자리에서 미투운동이 언급되면 20년차 공무원인 C(52·여) 씨는 "나는 미투 안 합니다, 편하게 자리 하세요"라는 말을 꺼낸다. C 씨는 "남성 중심 사회에 여성을 배척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니 분위기를 바꾸는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투 운동 이후 불거지는 변형적 '펜스 룰'과 여성 스스로 '명예 남성'을 선언하도록 만드는 분위기는 또 다른 2차 피해라고 지적한다.

부산성폭력상담소 이재희 소장은 "남성이라 해서 모두가 가해자는 아니고 여성이라 해서 모두가 피해자는 아니"라며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에 대한 민감성을 키우자는 미투 운동의 취지를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부산여성단체연합은 8일 오후 2시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 주제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각계에서 터져 나오는 미투운동은 극심한 성차별적 사회구조의 결과이자 더 이상의 억압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분노의 폭발이다"고 강조했다.

김준용·서유리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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