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본 영화' 여성학자 정희진이 중독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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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본 영화/정희진

'영화는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 일상을 구원해주는 고마운 중독이다. 영화는 '폭식'을 해도 괜찮고 '숙취'도 없다.'

대표적인 여성학자로 꼽히며 여성의 삶과 젠더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화두를 던지고 있는 정희진 여성학자가 '영화광'으로 살아온 지난 20년의 기록을 모아 책을 냈다. <혼자서 본 영화>는 저자만의 해석으로 접근한 28편의 영화가 촘촘하게 담겼다.

권력과 젠더에 대한 탁월한 시선이 돋보이는 책에선 그동안 봐왔던 영화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피아니스트'를 두고 저자는 '사랑은 여자의 일이되 사랑의 주체는 남자라는 체제의 법칙을 거부한 여자가 가슴의 내파를 견디지 못하고 자폭하는 이야기'로 축약해낸다. '여성 자신이 선택한 욕망으로서 마조히즘을 허위의식으로 간주하는 페미니스트 정치학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허위의식'이라고 일갈하는 저자. 그는 '가부장 사회는 여성에게 마조히즘이 있다고 강요하지만, 여성이 마조히즘을 선택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저자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두고선 '내 인생의 영화' 중 하나로 꼽았다. 중산층 가정 출신의 음악 교사에서 아이들의 야구방망이에 의해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마츠코의 일생을 보여주며 '마츠코의 피해와 고통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타인의 잘못'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저자는 언제나 자기 본모습대로 살아간 마츠코에게서 오히려 '삶의 위로'를 읽어내고 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또 어떠한가. '이 영화에서 남성은 말하는 주체가 아니라 평가 혹은 조롱받는 인식의 대상'이라는 저자는 임상수 감독이 남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남성들 간의 싸움을 완전히 상대화하고 남성 문화를 성찰하는 영화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남자가 남자를 그린 한국 영화 중에서 그나마 자기 냉소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한 대목에 시선이 머문다.

이혜영이 주연을 맡은 '사방지'를 두고선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만든다'는 저자. 생물학적 성별조차 인간이 만든 개념이라는 저자는 여성이 2등 인간, 제2의 성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실상 더 큰 피해자는 성적 소수자라고 밝히고 있다. 이밖에도 '인 더 컷', '디 아워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밀양', '거북이도 난다'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이어진다. 언급된 영화를 다시 보고 싶게끔 만드는 책이다. 정희진 지음/교양인/236쪽/1만 3000원. 윤여진 기자 only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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