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 오지여행 전문가 정연홍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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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내키는대로 떠나는… 여행이 나를 자유롭게 해"

오지여행 전문 가이드인 정연홍 씨가 최근 30일간의 네팔·인도·태국 여행을 마치고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김병집 선임기자 bjk@

그는 30일간 네팔·인도·태국 배낭여행을 마치고 막 김해공항으로 입국했다면서 점심 약속 장소에 씩씩하게 나타났다. 한 달 동안 단체 여행객들을 인솔해 오지를 다녀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쳐났다. 길게 자란 검은 콧수염만이 그간의 여정을 말해 줄 뿐, 표정엔 먼 여행에서 돌아온 안도와 만족감이 서려 있었다. 옅은 피로감이 묻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보는 사람에게 기분 좋게 할 정도의 여독으로 보였다.

대학 때 첫 해외여행 문화 충격
교사 꿈 접고 여행전문가 변신
30년 동안 77개국 배낭여행

한때 유학원 차렸다 쫄딱 망해
중남미·아프리카 가이드 전직
올 가을 밴드 통해 희망자 모집
남미 일주·아프리카 종단 계획

■유럽 배낭여행에서 영감을 얻다


자칭 타칭 '자유인' 정연홍(56) 씨. 지인들은 그의 별명을 '알츠'라고 지어 줬다. '알츠하이머'의 준말로, 4차원적 인간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남미 오지여행 안내자'이다. 영화 빠삐옹의 주제곡 'Free as the Wind'를 좋아한다는 그는 노래 제목대로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지금까지 30년 동안 77개국을 여행했다. 그의 사전에 '패키지여행'은 없다. 오로지 배낭여행만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것도 주로 오지다. 길 위의 삶에 싫증이 날 만도 한데 그는 여전히 집시처럼 떠돌이 생활을 즐긴다. 

인도 타지마할.
그럼 그는 가정이 없는 사람이냐고? 그렇지 않다. 그는 아내와 두 딸이 있는 어엿한 가장이다. 물론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태주고 있다. 오지여행을 하면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가 배낭여행을 시작한 것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4학년이던 그는 부산문화방송의 퀴즈 프로그램에서 연말 장원을 차지했다. 유럽행 왕복 항공권과 두둑한 현금을 받아 처음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40일가량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다. 이 여행은 그의 인생관을 180도 바꿔 놓았다. 부산대 지질학과를 졸업한 그는 지구과학 교사의 꿈을 과감히 접고 여행 전문가로 변신한다.

"유럽 여행은 굉장한 문화적 충격이었어요. 백인들은 1년 중 6개월 열심히 일하고, 6개월 동안 열심히 즐기는 것을 봤어요. 왜 우리는 일만 열심히 하고 살아야 하나, 강한 회의감이 들었지요. 넓은 세상을 봐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졸업 후 여행사 가이드로 취업했다. 외국을 맘껏 돌아다니고 싶었기 때문이다. 5년 정도 동남아 지역 가이드를 하며 돈도 제법 모았다. 곧 유학원을 차렸다. 그러나 IMF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쫄딱 망했다. 온라인 유학원의 쓰나미가 덮친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틈만 나면 혼자 배낭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새로운 사업 구상도 하곤 했지요."
오지여행가 정연홍씨의 아프리카 루트. 김병집 기자 bjk@
■5개월 일하고 7개월 논다

유학원 문을 닫은 후 그는 프리랜서 가이드로 전직했다. 그동안 경험을 살려 혼자서도 '사업'을 치고 나갈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틈틈이 그는 환경운동가로서도 활약했다. 공장 등의 불법 소각 현장을 단속해 담당 부서에 고발했다. 5년 동안 3000여 건을 처리했다. "부산·울산·경남의 대기 질이 조금이나마 좋아졌다면 제 덕이 큽니다"라며 그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정 씨는 5년 전부터는 중남미·아프리카 전문 여행 안내자로 변신했다. 특히 중남미 오지여행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혼자 중남미로 날아가 40일 동안 사전 답사를 하는 등 철저한 준비 끝에 여행객들을 모집해 함께 떠났다. 동행자 모집은 철저히 '밴드'를 통해 이뤄진다. 밴드 이름은 '여행 이야기'. 그는 지금까지 4차에 걸쳐 중남미 여행을 다녀왔다. 올가을에는 42일간의 남미 일주와 35일간의 아프리카 종단(이집트 카이로~킬리만자로~빅토리아 폭포~남아프리카 희망봉)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배낭여행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패키지여행은 자유로움이 없잖아요. 너무 천편일률적이죠. 배낭여행은 맘 내키는 대로 발길을 옮길 수 있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곳을 돌아볼 수 있죠."
아르헨티나 펠리토 모레노 빙하.
예컨대 남미 여행의 경우 모 여행사 패키지 상품(22일) 가격이 2700만 원이지만, 그가 인솔하는 상품은 42일에 900만 원대다. 그러나 중남미 등 오지여행을 할 때 혼자 다니는 건 금물이라고 조언을 잊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 씨가 1년 내내 여행만 다니는 건 아니다. 4~8월엔 인테리어업을 하며 생활비를 번다. 아파트 단지를 상대로 친환경 방충망을 공급하는 일이다. 딱 5개월만 열심히 일한다. 그 뒤로는 만사를 제쳐놓고 여행을 떠난다. 그는 왜 이토록 배낭여행에 천착하는 걸까?

아르헨티나 펠리토 모레노 빙하 앞에 선 정연홍(맨 오른쪽) 씨와 배낭족들. 정연홍 제공
■5060세대에 삶의 의미 전하고파

"해외에 나가 보면 우리가 얼마나 부자인지 알 수 있어요. 우리나라 경제가 엄청나게 좋아졌는데도 우리 스스로는 여전히 가난하다고 느끼고 더 열심히 일하려고 하잖아요. 아시아·아프리카·남미의 오지로 가 보세요.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가난해도 행복하게 살아요. 빨리 일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는 특히 5060세대(베이비부머)에게 삶의 진정한 자유로움과 의미를 일깨워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잖아요. 정년퇴직 이후에도 일자리를 찾지 말고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합니다." 그는 그것이 배낭여행이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각 구·군에서 강연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달려가 배낭여행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페루 마추픽추.
그는 얼마 전 인도 여행 중의 목격담을 들려줬다. 바라나시에서 죽은 사람이 장작더미 위에서 태워지고, 그 속에서 배고픈 아이들이 금붙이를 찾아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무상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는 것이다.

"배낭여행을 떠나세요. 여행은 자신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는 인생 최고의 선물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에는 '노동이 너희들을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경구가 붙어 있다고 한다. 정 씨는 이를 패러디한 "여행이 너희들을 자유롭게 하리라"를 외치면서 자리를 떴다. 그의 마음은 벌써 아프리카 어느 오지에 가 있는 듯했다. 010-5510-8200.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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