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스크린산책]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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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장애인과 괴생명체의 이색 러브 스토리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세상에 진부하지 않은 러브 스토리가 있을까마는, 캐릭터나 '톤 앤 매너'에 따라 색다르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은 종종 있다. 가령 '그녀'(감독 스파이크 존스)는 한 남성과 무형 A.I 사이의 만남부터 연애, 이별을 그럴 듯한 상상력으로 그려냄으로써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와 차별화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13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면서 화제가 되고 있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 또한 큰 틀에서는 사랑의 장애물에 부딪힌 여느 연인들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적어도 이전까지 본 적 없는 주인공들을 앞세운 이색적인 러브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셰이프 오브 워터' 또한 새로운 캐릭터들을 앞세워 연애담이라는 외피 안에 현대 사회의 불안과 병리적 징후들을 충실히 담아낸다. 한 편은 미래를, 한 편은 1960년대라는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연인은 언어장애인과 온몸이 비늘로 뒤덮인 '괴생명체'(이하 '그', 더그 존스)다. 미항공우주연구센터에서 청소를 하던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수조에 갇힌 채 실험실에 들어온 푸른빛의 '그'에게 끌려 먼저 소통을 시도한다. 지능과 감정을 가진 괴생명체가 엘라이저의 행동에 반응하면서부터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교감하며 점차 가까워진다.

1960년대 과거 배경으로 하지만
현시대 억압·혼돈·불안 파고들어


실험실의 보안책임자인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가 '그'를 해부해 우주 개발에 이용하려 하자 엘라이자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지인들과 함께 계획을 세운다. 장애인, 흑인, 게이, 양심적인 과학자가 연합해 미국정부라는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과정은 범죄 스릴러의 관습을 따라 진행되는데, 이들의 첫 번째 작전이 성공하는 부분의 쾌감은 여느 스파이 영화 이상이다. 러시아와의 우주개발 전쟁으로 과학기술의 진보는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던 반면,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은 공공연하게 유린당하고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유사한 시기를 배경으로 흑인여성들의 인권문제를 다뤘던 2016년 작 '히든 피겨스'(감독 데오도르 멜피)와의 접점이 잘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왜 지금, 엘라이자와 '그'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는가는 자명하다. 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전 세계적으로 진보와 보수가 맞부딪치고 종교적, 민족적 갈등으로 인한 테러와 국지전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는 배타성에 기반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또 다른 억압과 혼돈, 불안에 빠져 있는 동시대를 적확히 파고든다. 낭만적인 미장센과 음악이 비극적인 상황과 대비를 이루며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작품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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