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그림… 재앙을 쫓고 경사를 맞이하는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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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그림반'의 한 수강생이 다양한 민화가 벽에 걸려 있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음력으로 새해가 밝았다. 다들 만나는 사람마다 '복을 많이 받으라'고 기원한다. 옛날에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그믐날에 재앙을 쫓기 위한 '연종제' 나례 의식을 펼치기도 했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폭죽 등을 터뜨려 집 안에 숨어 있던 잡귀들과 재앙을 몰아낸다는 것이다.

섣달그믐날 연종제처럼 '벽사진경'(재앙을 쫓고 경사를 맞이함)을 부르는 그림이 있다. 행복한 삶을 살기 바라는 소망을 담은 '정겨운 우리 그림'인 민화다.

화려하고 대담한 조선 민중 그림
장지에 아교 바르고 채색 여러 번
집중할 수 있고 그림 뜻 좋아 힐링

한국적인 특색 강해

민화는 '서민의 그림'이다. 조선 시대에는 사회 계층이나 신분의 구별 없이 다양하게 민화를 그렸다. 민화는 정통 회화보다는 묘사의 세련도 등이 떨어지지만, 소박한 형태와 대담하고도 파격적인 구성, 아름다운 색채 등은 오히려 한국적 미의 특색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도 민화는 전문적인 화가보다는 그림을 취미로 배우거나 민화의 벽사진경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즐겨 그린다.

최근 들어 민화는 점점 관심을 끌고 있다. 2014년 MBC 드라마 '마마' 방영을 계기로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주인공 송윤아가 세계적 민화 작가로 등장한 덕분이었다. 최근에는 지도자 자격증까지 생겼다.

최근 들어 '힐링'을 찾는 직장인들이나 대학생들이 민화교실 문을 많이 두드린다. 30대 초중반은 물론 40~50대나 60대도 있다. 아직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다.

부산 북구 산성로 66(화명동) '소연그림반(원장 양소연·010-8775-3414)'도 마찬가지다. 양 원장은 신라대 미술학과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3년 전부터 화실을 열어 혼자 그림을 그리다 가르쳐 달라는 사람이 늘어나자 '소연그림반'을 열었다. 김해에 사는 30대 여성 직장인은 매주 주말 '소연그림반'에 와서 민화를 배운다. 금정구에 거주하는 남성 직장인도 매주 주말 민화를 그리러 온다.

'소연그림반'에서 민화를 배우는 60대 주부는 닭, 해태, 호랑이, 삽살개 등을 담은 '문배도'를 그린 뒤 액자에 넣어 아파트 현관 앞에 걸어놓았다. 문배도는 '문에 붙이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민화를 액자에 넣는 것을 '예쁜 옷을 입힌다'고 부른다고 한다.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아 

건강, 출세, 부귀영화, 장수를 상징하는 소재로 그린 다양한 민화들.
민화의 주요 소재인 꽃, 곤충, 동물 등은 건강, 출세, 부귀영화, 장수를 상징한다. 닭은 새벽을 알리는 동물이어서 악귀를 쫓는다는 뜻이 있다. 해태는 화재 예방, 호랑이는 악귀 퇴출, 삽살개는 집을 지키는 수호신의 의미를 담고 있다.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연꽃과 잉어가 함께 있는 그림은 자식의 출세를, 연꽃과 새가 함께 있는 그림은 부부의 화목을 의미한다. 십장생도에 있는 복숭아, 소나무 등은 장수를 뜻한다.

서양화를 처음 배우면 그림 스케치나 채색을 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민화의 경우 초보자라도 정해진 도안을 따라 그릴 수 있어 배우기 쉽다. 처음에는 강사가 마련해 준 도안을 4~7개월 정도 따라 그리다가 실력이 늘면 자신의 도안을 따로 만들어 그릴 수 있다.

양 원장은 "옛날 민화는 그림의 색이나 형태가 고정적이었다. 최근 현대적 해석을 가미한 민화에서는 색을 다양하게 골라 그린다. 색이 예뻐 그림도 예쁘게 나온다"면서 "민화를 그리면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 직장의 스트레스를 잊고 해소할 수 있다. 여기에 기복의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힐링이 된다"고 말했다.

민화는 한지 중에서 주로 장지에 그린다. 장지는 원래 전라도 지방에서 주로 생산하던 종이다. 화선지보다 두껍고 질기며 지면에 윤이 나서 그림을 그리거나 문서를 기록할 때 쓰인다. 스케치용으로는 얇은 노루지를 사용한다.

민화를 그리는 물감으로는 가루인 분채와 튜브가 있다. 분채는 아교를 섞어서 사용한다. 초보자는 튜브물감을 사용해야 한다. 민화를 제법 배워야 가루 물감을 사용할 수 있다. 양 원장은 "튜브물감은 탁한 색을 낸다. 반면 분채는 색의 층을 쌓을수록 예뻐진다"고 말했다.

작품 완성에 한 달 걸려
초보자용 스케치.
민화를 그리는 순서는 다소 복잡하다. 먼저 합판에 장지를 붙인다. 이를 배접이라고 한다. 이어 보조제인 아교를 장지에 4~6번 바른다. 장지에는 틈이 많기 때문에 아교를 바르지 않으면 물감이 흘러내린다. 먼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바른다. 다 마르면 거꾸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른다. 또 다 마르면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바른다. 양 원장은 "좌우든 상하든 바르는 순서는 상관없지만, 반드시 한쪽으로만 발라야 한다"고 말했다. 아교를 바른 장지는 사흘 정도 말려야 한다.

이어 그림을 그릴 차례다. 기본 도안을 한 노루지를 장지에 붙인다. 노루지에 파스텔을 바른 뒤 잉크가 나오지 않는 볼펜 등으로 기본 도안을 따라 그린다. 이렇게 하면 장지에 도안이 연하게 베껴진다. 이후 채색하면 된다. 채색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5번 정도는 덧칠해야 한다. 양 원장은 "물감을 한 번에 바르면 물감이 종이 사이에 스며들어 버린다. 연하게 해서 여러 번 채색해야 제대로 은은한 색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해서 민화를 제작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작품 한 개를 만들려면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초보자는 한 번에 하나밖에 만들 수 없지만, 숙련된 사람은 한 번에 여러 개를 동시에 작업한다. 양 원장은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민화를 배우기가 쉽지 않다. 차분한 사람이 유리하다. 성격을 누그러뜨리려 배우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소연그림반' 화실에는 양 원장과 수강생들이 그렸거나 그리고 있는 여러 민화가 종이에, 또는 액자에 담겨 있었다. 꽃이 든 화병도 있었고, 가지에 새가 앉은 꽃나무도 있었다. 사슴뿔에 분홍색 벚꽃이 핀 그림도 있었다. 다양한 그림들이지만, 의미는 한가지로 통했다. "무술년 한 해도 우리 가족이 모두 무사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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