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9번 뽑으면 한우세트!" 나누는 情 하나되는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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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받기 위해 번호표를 뽑는 동신유압 직원들의 모습. 동신유압 제공

'누구는 햄 세트 나는 식용유 세트….'

드라마 '미생'에 보면 정규직, 비정규직의 명절 선물이 달라 가슴이 먹먹해지는 장면이 나온다. 선물에서 차별을 받으면 순식간에 들떴던 연휴의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런데 일부러 차별을 조장하는 회사도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선물의 가격이 다르고 심지어 누군가는 선물을 받지 못하는데도 표정이 밝다.

사출기 제조 ㈜동신유압
회사로 온 선물 직원과 나눔
7년째 이색 행사 '함박웃음'


사출기를 만드는 ㈜동신유압은 명절 연휴에 들어가기 전 중요한 행사를 갖는다. 바로 '선물 뽑기'다. 뽑기의 대상은 동신유압 앞으로 들어오는 선물들이다. 명절을 앞두고 동신유압에는 80여 개의 선물이 들어오는데 이 선물들은 대회의실에 고스란히 진열된다.

대회의실의 문은 연휴 하루 전 오후가 되면 열린다. 그 문 앞에서 동신유압의 직원들은 줄을 서서 뽑기를 시작한다. 뽑기를 마친 직원들의 손에는 1번, 2번, 34번, 70번 등 번호가 적혀 있다. 물론 뽑기의 묘미인 '꽝'도 있다.

이 번호는 선물이 진열되어 있는 대회의실에 들어갈 수 있는 순서표다. 1번을 뽑은 직원은 가장 먼저 회의실에 들어가 선물을 고르면 된다. 원칙은 하나다. 1번은 어느 것을 선택해도 되지만 선물 내용을 뒤져보는 것은 안 된다. 또 한 번 손을 대면 번복할 수 없는 '낙장불입'이다. 이렇게 양주 세트, 식용유 세트, 사과 세트 등 마지막 직원까지 선물을 고르면 행사는 끝이 난다.

대표의 특권 아닌 특권도 있다. 동신유압의 대표 이름은 김병구다. 그래서 9번, 19번, 29번 등 '9'가 포함된 번호를 뽑은 경우에는 '대표의 특권'이 주어진다. 바로 한우선물세트와 같은 구이용 선물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 직원들은 '대표님 이름에 9(구)가 들어가 특권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김 대표는 끝까지 9가 '구워먹다'와 발음이 같다는 점이 특권이 생긴 이유라고 주장한다.

선물 뽑기에는 한 번은 엔지니어들이, 한 번은 사무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참여한다. 동신유압의 직원은 150여 명인데 '지지리도 복이 없어' 몇 년째 선물을 못 받는 사람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재미로 시작했다 진짜로 맘이 상할까 봐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같은 세심한 설계(?) 덕에 7년째 이 행사는 무사히 이어지고 있다.

명절 선물을 나누는 이유는 하나다. 이 모든 선물이 김 대표가 아닌 동신유압에 온 것이기 때문이란다. 김 대표는 "나 개인이 아닌 동신유압에 온 것이니만큼 직원들과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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