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아트]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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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엑스, 마틴 루서 킹, 메드가 에버스의 '메시지'

영화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모든 영화는 현재진행형이다. 당연한 말이다. 스크린에서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 한 우리는 화면이 던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눈다고 봐도 무방하다. 설사 그것이 과거의 기록이나 재현이라 해도 말이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I Am Not Your Negro)'는 미국 흑인 인권사에 대한 기록이자 기억을 현재화 시키는 영화다. 20세기 미국의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제임스 볼드윈은 자신이 만난 흑인 인권운동가들에 대한 30페이지 분량의 에세이 '리멤버 디스 하우스'를 썼고 이를 바탕으로 라울 펙 감독이 영상화 했다. 다만 애초에 미완성인 원고를 바탕으로 했기에 정확히 옮겨 낸 건 아니다. 1950년대부터 흑인인권운동을 펼쳤던 말콤 엑스, 마틴 루서 킹, 메드가 에버스 세 명의 인물과 연관된 기억과 느낌을 더듬는 이 영화는 사무엘 L 잭슨의 내레이션과 제임스 볼드윈의 강연 영상, 흑인인권운동가들의 자료화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하자면 그 시절 흑인인권가로부터 시작된 영감이 작가의 사유를 거치고 감독의 화답으로 이어져 온 질문과 답변, 그 연쇄 고리라고 보면 적당할 것이다.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에 대한
제임스 볼드윈의 에세이 영화화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미완의 역사에 대한 목격이다. 말콤 엑스, 마틴 루서 킹, 메드가 에버스의 공통점은 모두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1960년대에 피살되었다는 점이다. 제임스 볼드윈이 이들의 삶으로부터 받은 영감 역시 미완의 에세이로 남았다. 그리고 라울 펙 감독 역시 이들의 기록을 지나간 역사 속에 가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 영화의 목적을 명백히 알 수 있는 연결이 하나 있다. 제임스 볼드윈은 1960년대 TV쇼에 나와서 씁쓸하게 자조한다. "흑인을 니그로라고 부르는 한 희망은 없어 보입니다." 다음 장면, 영화는 2014년으로 시간을 건너뛰어 퍼거슨 사태로 연결된다.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서 보여 주는 이유는 단순하다. 1965년 LA 와츠 시위와 1991년 로드니 킹 구타 사건으로 촉발된 LA폭동을 나란히 놓고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는 불편한 진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는 단지 흑인인권에 대한 호소가 아니다. 라울 펙 감독의 관심은 여기서 한 걸음 확장되어 다양한 종류의 차별과 혐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흑인인권의 과거와 현재를 겹쳐 비교하는 것처럼 영화는 1890년 운디드니 인디언 학살과 1999년 콜럼바인 고교 총기사건을 연결시킨다. 어쩌면 차별과 혐오란 인류가 존속하는 한 마침표를 찍는 게 불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그렇기에 라울 펙 감독은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하고 기록과 기억을 통해 영감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이 영화가 과거를 현재화 시키는 방식은 다소 무리하고 도식적인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위적인 연결을 끝내 긍정하고 싶은 건 아마도 그것이 결국 인류가 향해야 할 올바른 방향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생은 죽음으로 정지했지만 그들의 혁명은 멈추지 않고 지금도 다음 걸음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이 영화 역시 그 무수한 걸음 중 하나다. 그렇게 세상은 아주 미세하게나마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송경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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