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더욱이, 잠룡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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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유지태 분)는 헤어지자고 말하는 은수(이영애 분)에게 저렇게 외친다. 글쎄, 사랑은 변할 수도 있고 변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은 변한다. 생장사멸을 거치기 때문에, 말을 '유기체'라고도 하는 것.

'개기다, 구안와사, 굽신, 꼬시다, 놀잇감, 눈두덩이, 딴지, 삐지다, 사그라들다, 섬찟, 속앓이, 허접하다.'

이게 바로 변하는 증거들이다. 이것들은 원래 표준어가 아니었다. 이 가운데 '눈두덩이, 삐지다, 허접하다'는 아예 <표준국어대사전>에 없었고, 나머지는 각각 '개개다, 구안괘사, 굽실, 꼬이다, 장난감, 딴죽, 사그라지다, 섬뜩, 속병의 잘못들'이었다.

국립국어원은 2014년 12월 이 '잘못들'을 표준어로 처리해 사전에 올렸다. 국어심의회는 또 '레이더'로만 써 왔던 외래어 'RADAR'의 표기를 '레이다'로 바꿨다. 다만, 그동안 널리 써 온 '레이더'는 관용적인 표기로 인정받아 계속 쓸 수 있게 했다.

2016년 1월 1일에는 '-고프다, 마실, 이쁘다, 찰지다'가 표준어가 됐다. '-고 싶다, 마을, 예쁘다, 차지다'로만 써야 했는데, 복수 표준어로 인정받은 것이다. 또 '잎새, 푸르르다'도 드디어 표준어 반열에 올랐다.

2017년 1월 1일부터는 '걸판지다, 까탈스럽다, 주책이다'도 '거방지다, 까다롭다, 주책없다'에 더해 복수 표준어가 됐다.

말은, 특히 표준어는 역시 머릿수 싸움이다. ①많은 사람이 ②꾸준하게 잘못 쓴 '덕분'에 이들이 표준어의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새로워지고 불편함이 조금씩 줄어드는 게 진보라면, 우리말은 항상 진보하고 있는 셈이랄까. 물론 언중이 가만있었는데 새로운 표준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니므로, 결국 힘을 모아야 더 나아진 세상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게다가, 저런 흐름을 놓치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소릴 들을 수도 있다.

'시민들 다수가 서울시의 미세먼지 대책을 지지하고 있네요. 더우기 민주당 지지자의 73%가 지지하고 있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얼마 전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한데, 저기 나온 '더우기'가 '더욱이'로 바뀐 건 무려 30년 전인 1988년 맞춤법 개정 때 일이다. 영향력 있는, 더욱이 대권을 바라보는 정치인이라면 좀 더 우리말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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