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가장 사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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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베트남 다낭은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 중 하나다.'

한 신문에 실린 어느 여행작가의 글 첫 문장인데, 글쓴이가 기자였다면 비난을 좀 받을 뻔했다. 다낭이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인지 아닌지가 불분명하기 때문.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라면 '베트남 다낭은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다'라야 했고, 그렇지 않다면 '베트남 다낭은 한국인이 아주 선호하는 여행지다'라야 했을 터. 취재가 부족하면 저렇게 두루뭉술하게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 알다시피 '가장 ~한 ○○ 중의 하나'라는 표현은 영어 'one of the most ~ ○○'를 번역한 것이다. 뭐, 영어를 번역해 쓰는 건 좋다. 문제는, 직역을 하는 바람에 우리 말법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가장'이라는 우리말은 '여럿 가운데 어느 것보다 정도가 높거나 세게'라는 뜻이다. 단 하나뿐이라는 얘기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도 하나요, 가장 긴 강도 하나요, 가장 키 큰 사람도 한 사람뿐이다. 한데, 그런 '가장' 뒤에 여럿이 있다는 뜻인 '중'이 붙었으니 사달이 날 수밖에 없는 것.

'21일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에 따르면 애플은 올해 '전 세계 가장 존경받는 기업(World's most admired companies 2018)'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신문기사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라면 당연히 1등이니 '1위를 차지했다'가 쓸데없다. 게다가 사람에게 주로 쓰이는 '존경'보다는 '칭찬, 감탄, 동경, 숭배'에서 골라 쓰는 게 옳았다. 그러니 '칭찬받는 세계 기업 순위'나 '우러름 받는 세계 기업 순위'쯤이면 무난하지 않았을까.

예전에 아이들이 즐기던 난센스 퀴즈에 이런 게 있다. "백두산에서 제일 큰 나무는 몇 그루게?" 답은 당연히 "한 그루"인데, 요즘 같으면 영어식 표현에 푹 젖어서 정답 맞히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둘러보면 신문이나 책마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 중 하나/국내 최대 공기업 중 하나'처럼 버터 냄새 나는 표현이 널렸다. 이렇게 우리 말글살이를 어지럽힌 책임은, 이 나라에서 말 좀 하거나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져야 한다. 암만 살펴봐도 민초들이 저런 표현 쓰는 건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그럼에도, 자기도 모르게 저런 영어식 표현이 자꾸만 튀어 나온다면, 아내(혹은 여자친구)에게 이렇게 한번 얘기해 보기를 권한다.

"당신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 중 한 사람이야."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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