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북한을 '넛지(nudge)'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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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준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은 행동경제학을 개척한 공로로 시카고 대학교의 리처드 세일러 교수에게 돌아갔다. 그는 <넛지(nudge)>라는 제목의 베스트셀러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학자이다. '넛지'란 조그만 환경 변화를 통해 상대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남자 화장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점점 많은 남성 변기에 검은색 파리가 그려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개 남자들은 볼일을 볼 때 조준하는 방향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변기 주변이 더러워지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눈앞에 목표물이 있으면 거기에 집중하게 되고 자연히 '발사물'을 변기 가운데에 맞힐 확률도 높아진다. 한 조사는 이 파리 그림이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량을 80%나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최근 평창 카드를 내세운 김정은의 신년사를 계기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에 대해 기대가 한껏 고조되고 있다. 단절됐던 판문점 직통전화 채널이 즉각 복원되고,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를 위한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렸다. 동계올림픽 기간 북한 예술단을 파견하여 문화교류도 시행할 계획이다. 우리 정부도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평창 올림픽이 끝난 뒤에 실시하자고 미국 정부에 공식 요구했고, 미국도 이를 수용하였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순간(Goldilocks moment)'에 들어왔다.

모처럼 보는 한반도 평화 무드
북핵 해결 없이 화해 지속 안 돼

북미, 치킨게임 양상 치달리면
채찍도 당근도 효과 없어 고민

북 설득보다 우리 방향 이끄는
'넛지' 전략 실천으로 효과 기대


모처럼 맞은 한반도 '올림픽 평화'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은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 없이는 현재의 화해 무드는 계속될 수 없다는 점이다. 주변국의 경고와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더 큰 핵실험을 하였고, 사거리가 점점 멀고 정확한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과거 김정일 정권은 핵 개발을 통해 주변국으로부터 경제 지원을 얻어내려는 소박한 모습을 보였다면, 김정은이 지도하는 북한에 핵은 더 이상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미국과 북한은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 협상 테이블에 앉기는커녕 서로 협박의 수위를 올리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다"고 밝힌 데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나는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이 있다"고 맞불을 놓았다. 미국과 북한은 어느 누가 양보하지 않는 경우 양쪽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가 벌어지는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각각 자동차를 타고 서로에게 돌진하면서, 양보하면 겁쟁이(치킨)가 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피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제정치의 현실주의자들은 한 국가의 행동 변화는 채찍(군사적 제재)이나 당근(경제적 유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등 경제적 유인책도, 강공인 경제봉쇄나 정밀타격의 위협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부족함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몽둥이와 당근의 중간쯤 되는 '넛지'를 통해 미국과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은 어떨까? '넛지'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금지시키거나 경제적 제재를 하지 않고, 조그만 환경적 변화를 통해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넛지'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다. 과일을 "먹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과일을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는 것이 '넛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대화 성사에 트럼프 대통령의 공이 매우 크다'고 말해 그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 준 것은 자기과시를 좋아하는 트럼프에 대한 일종의 '넛지'이다. 북한이 숭배하는 주체사상의 근원에는 변화의 주도권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외부의 압력보다는 내가 알아서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을 설득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들이 주도권을 행사하되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도 북한에 대한 '넛지'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자신을 과대 포장하는 경향에서 닮았다고 볼 수 있다. 합리적인 사람이 보기에 '넛지'는 상대를 농락하는 조삼모사 정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많은 연구에서 인간은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받는 것보다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받는 것을 훨씬 선호하는 '체계적 비합리성'이 있다고 밝혀졌다.

2018년은 노벨 경제학상이 이론을 넘어 실천이 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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