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을 찾아서] 개평마을은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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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 된 듯 오래된 마을에서 하룻밤

일두고택이 있는 개평마을은 체험이 가능한 고택이 즐비하고 한옥호텔과 음식점도 적잖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한옥마을이다.

100여 가구가 사는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한옥 60여 채가 들어서 있어 전통마을의 멋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개평이라는 지명은 두 개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에 있어 '낄 개(介)'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 지어진 이름이다. 일두고택(010-6395-5111) 외에도 문화재급 고택들이 즐비하다. 볼거리·먹을거리도 제법 있다.

한옥 60여 채 들어선 '전통마을'
자연재 사용한 오담고택
마을서 가장 오래된 노참판댁고가
풍천노씨·하동정씨 고가 등
문화재급 고택 즐비해 눈 즐거워

한옥호텔·한식당·갤러리 카페 등
숙박과 먹을거리 체험도 이색적
정자·서원 등 선비문화 유산도 남아


■고택의 향연

오담고택(경남 유형문화재 제407호)은 1840년에 건립된 건물로 부재의 단면은 크지 않으나, 자연재를 그대로 사용한 가구 기법이나 안채, 사랑채에 모두 전후 툇간을 적용한 점 등이 특징이다. 조선 후기 주거 건축의 양식과 가구 기법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또한, 종가에서 분가한 양반 계층의 주거 형태라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있다.

풍천노씨 대종가(경남 문화재자료 제343호)는 세조 때 청백리 송재 노숙동(1403~1463)의 종가다. 선생이 1824년 창원에서 처가(정여창의 고모집 사위)인 이곳에 자리를 잡고 이사를 오면서 지은 집으로, 70여 년 전 재목을 그대로 사용해 중수했다. 5량 구조에 합각지붕 형식으로 간결한 가구 기법, 장식적 기법 등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바둑계 거물 노근영이 태어난 노참판댁고가.
노참판댁고가(경남 문화재자료 제360호)는 바둑계 일인자였던 사초 노근영(1875~1944)이 태어난 곳이다. 안채는 마을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945년 중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선생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일본 등지로 다니면서 가다니 8단과 혼다슈고 초단에게 백을 들고 만방으로 이기는 등 조선 바둑계의 국수로 불렸다. 예전에는 안채 앞마당 좌우로 광 1채, 억새로 만든 3칸 집이 더 있었으나, 전부 허물어져 현재는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와 사당이 남아 있다.
조선 후기 남부지방 상류 주거의 전형을 보이는 하동정씨고가.
하동정씨고가(경남 문화재자료 제361호)는 상량문 기록으로 볼 때 1644년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건립 당시에는 사랑채를 비롯한 여러 건물로 구성돼 있었으나, 모두 훼철되고 현재 모습만 남았다. 건물 배치 방식에서 조선 후기 남부지방 상류 주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자료로 학술적인 가치가 크며,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안채는 맞배지붕으로 부섭지붕을 했고 정면 2칸의 대청은 퇴를 합하면 4칸 규모를 가진다. 활처럼 휘어진 대들보 위에 5량의 가구를 두었고 판대공을 설치했다.

■숙박과 먹을거리

개평마을에는 고택 체험 외에 전통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정일품명가'가 그곳. 이곳은 한옥호텔로 숙박할 수 있는 방이 12개다. 마당에 넓은 정자가 있어 앉아 차를 마시기에도 딱 좋다. 연회장이 있어 전통혼례도 진행된다. 사계절 예약이 가능하다. 1577-8958.

깔끔하고 가성비가 높은 식당들도 제법 눈에 띈다. 일두고택의 주인장 정의균 선생의 여동생인 정현영 씨가 운영하는 '고택향기'도 한 곳. 종가 음식의 맥을 잇는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집이다. 종가비비밥(9000원), 종가국수(7000원), 종가한상(2만 원) 등 메뉴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맛의 깊이는 깊다. 010-3652-3963.

지리산 로컬푸드를 표방하며 문을 연 '함양객주'도 추천할 만한 곳. 흙돼지, 화덕 피자, 청국장·된장 등 3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메뉴가 준비돼 있다. 055-964-3004.

일두고택과 인접한 곳에 있는 '솔송주 문화관'도 빼먹을 수 없는 곳. 솔송주를 빚는 박흥선 씨는 경남 무형문화재 제35호다. 박흥선 명인은 30년 전 500년 동안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의 솔송주를 전수 받아 술을 빚어오고 있다. 솔송주는 국산 햅쌀과 송순, 소나무 잎과 지리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청정 암반수로 만들어지는 가양주다. 솔송주 빚기 체험과 시음, 고택체험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곳이다. 010-5259-1943.

갤러리 카페 '호미랑 교육농장'은 압화의 매력에 풍덩 빠질 수 있는 공간이다. 야생화 생화만을 사용해 만든 압화 수십 점이 전시돼 있는데, 묘한 매력을 자아낸다. 압화 만드는 과정을 체험하고 작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010-8881-4243.

개평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마을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만큼 전통이 잘 보존된 까닭이다.

■선비문화 유산들

개평마을 정일품명가 뒤쪽 터에 초선정이 있다. 조선 말기 이 지방의 명망 있는 선비 19공(유림)이 영남학파의 맥을 이어온 이 지방 선비들의 정신을 기리며 학문을 논하고 여흥을 즐기기 위해 세운 정자다. 애초 상림공원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2012년 3월 19공들의 태초 활동지인 이곳으로 이전했다. 앞으로 이곳에서 전국 시백일장 등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일두 선생이 배향된 남계서원.
한편 함양에는 일두 선생을 기려 후학들이 건립한 남계서원(사적 제499호), 군자정(경남 문화재자료 제380호), 일두 사당비(경남 문화재자료 제239호), 일두 묘 등 일두 선생과 관련한 흔적과 유적들이 수두룩하다. 기자는 박행달 함양군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로 이곳들을 둘러봤다.

남계서원은 1552년 정여창을 기리기 위해 개암 강익이 주도해 설립했는데 1566년에 사액서원이 됐다. 정유재란 때 불탔다가 1603년 복원됐으며 1612년 중건됐다. 남계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철거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과 사우 중의 하나다. 남계서원은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재등재 신청 절차를 밟고 있는 9개 서원 중 하나다.

안의면 봉산리에는 정여창 사당비가 있다. 1583년 정여창을 기리기 위해 현감 이후와 유림이 용문서원 유허지에 세운 비석이다. 흥선대원군 서원 철폐령으로 사당은 훼손되고 뒷산 언덕에 유허비만 남았으나, 사당비는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수동면 우명리 승안산 자락에 정여창의 묘소가 있다. 묘역 내에는 정경부인 완산이씨의 묘가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정여창 묘 앞에 선 신도비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려 하자 자결을 시도해 청사에 이름이 길이 빛나는 동계 정온이 지은 것이다. 정온 또한 이웃 고을 출신으로 정여창을 사숙했던 인물이다. 글·사진=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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