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앓는 부산] '독감 포비아' in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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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엔 북적이는 환자, 거리엔 술렁이는 공포

독감 환자가 최근 한 달 새 10배가 늘면서 병원이 독감 환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8일 오후 부산 동구 한 병원의 소아청소년과에 보호자와 함께 온 어린이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독감이 크게 유행하면서 시민들의 '독감 포비아(공포증)'도 증폭되고 있다. 넘쳐나는 독감 환자들로 병원과 약국은 북새통을 이루는 반면 회사, 공공기관, 어린이집 등에서는 독감을 피하기 위해 잔뜩 움츠러들었다.

'품귀' 치료약 찾아 약국 '순례'
전염 공포에 신년회 잇단 연기
사무실 절반이 마스크 '진풍경'
일부 구청, 독감 직원 휴가 권유
어린이집 초비상, 키즈카페 울상

■병원·약국 하루종일 북새통

어린이와 청소년이 특히 독감에 취약한만큼 부산의 아동병원과 소아과는 말그대로 포화상태다.

56개 입원실을 가지고 있는 동래구 부산아동병원은 현재 입원 환자의 40%가량이 독감 환자일 정도다. 부산아동병원 김준호 행정부장은 "독감 내원환자가 지난해보다 30% 늘어 하루에 200여 명에 이른다"며 "지난달 말부터 이어진 독감 환자들로 일손이 부족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 병원에서 만난 박성명(31·여) 씨는 "지난주부터 연차를 내고 집안의 독감 환자를 돌보고 있다"며 "2살 아이는 A형 독감에, 친정 어머니는 C형 독감에 걸려 병간호에 여념이 없다"고 말했다.

남구의 한 내과를 찾은 독감 환자 이 모(69) 씨는 "병원이 독감 환자들로 가득 차 2시간 30분 이상을 기다린 뒤에야 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이 병원 간호사 김 모(40·여) 씨는 "지난달부터 지금까지 250명 가량 독감 검사를 받았는데 이 중 150여 명이 확진 판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역별로 일부 약국에서는 독감 치료약인 타미플루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구에 사는 박 모(40) 씨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독감에 걸렸는데 근처 약국에 타미플루가 없어 동네 약국을 몇 곳이나 들러 약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독감 치료 주사인 '페라미플루'도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7만 원가량의 비교적 고가 주사임에도 증상이 심한 독감 탓에 이를 찾는 환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서구 토성동의 한 내과 간호사 이 모(39·여) 씨는 "오늘 독감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 중 절반 가량이 페라미플루를 찾았다"며 "추가로 주문해야 하는데 공급이 원활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주요 의약품 도매상마다 타미플루 공급 등에 1~2일 정도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만일의 부족 사태에 대비해 현황 파악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잔뜩 움츠러든 일상의 공간

직장인들도 '독감 맹공습'을 피하지는 못했다. 동구 한 중소기업 모 부서에서는 8일 결근하거나 조기 퇴근하는 직원들이 속출했다. 출근한 직원들도 절반 가까이가 마스크를 낀 채 근무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 모(48) 씨는 "동료와 모처럼 점심 약속을 했는데 독감에 걸려 취소했다"며 "피해를 주지 않으려 혼자 밥 먹는 이들도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신년 모임을 미루는 이들도 있다. 부산의 한 공기업에 재직 중인 이 모(30) 씨는 "부서 사람들 중 절반 가까이가 독감 또는 감기 증세를 보여 이번 주 예정됐던 신년회를 미뤘다"며 "회식을 갖더라도 서로 술잔을 돌리는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시민과의 접촉이 많은 공공기관들도 독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일부 구청은 독감에 걸린 직원을 대상으로 휴가를 적극 권유하고 있다.

독감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부산지역 어린이집들은 독감 유행 직후부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어린이집에서는 부모들에게 영유아들이 발열이나 기침 등 독감 증상을 보일 경우 시설에 통보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부산의 한 어린이집 관계자는 "독감에 걸린 아이들은 가정에서 치료받도록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아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을 키즈카페도 독감 유행 직후 발길이 줄어들었다. 부산의 한 유명 키즈카페는 올해 1월 첫째주 이용객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3%가량 줄어들었다.

방학 중이지만 일선 학교들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보충수업을 듣거나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많아서다. 서구의 한 고교는 기숙사생 4명이 지난주 독감에 걸리자 전염을 우려해 전원 귀가 조치를 내렸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독감이 유행하자 예방접종 인파도 늘고 있다. 사하구 보건소 홍상기 소장은 "예년의 경우 12월 말까지만 독감 예방접종을 실시했는데, 최근 뒤늦게 예방접종을 문의하는 주민들이 있어 예외적으로 예방접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준영·조소희·서유리·최강호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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