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해수담수화 시설 결국 가동 중단] 국책사업 믿고 밀어붙이기 '사회 합의' 건너뛰다 '풍덩'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덥석 물었다 코 꿰인 격. 기장 해수담수화 사업의 현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국책사업이란 이유로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면서 주민 협의 등 사회적 합의는 생략했고, 시설 소유·운영 협약을 맺을 땐 법률적 검토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체 취수원 기대 부산시 
타 지자체와 경쟁 끝 유치 

원전 옆 안전성 우려 불구
"수돗물 공급" 논란 자초 

시설 처리 두고 정부와 이견 
유지관리비만 갈수록 불어

■잘못 끼운 첫 단추

해수담수화 사업은 참여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R&D(연구개발) 혁신과제로 해수담수화 플랜트 시스템이 선정되면서부터다. 2008년 사업이 본격 추진되면서 테스트베드(시험무대)를 놓고 전국 지자체가 경쟁을 벌였고 그해 12월 부산시가 대상지로 낙점받았다.

당시 부산시는 해수담수화 기술을 고도화해 지역 중심 산업으로 발전시키고, 낙동강 수질 사고에 대비한 대체 취수원으로 활용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며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기장 해수담수화 시설은 당초 테스트베드용 시범사업 정도로 여겨졌지만, 생산된 물을 기장지역 수돗물로 공급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격렬한 주민 반대에 부딪혔다. 원수인 바닷물 취수 지점이 인근 고리 원전과 11㎞ 떨어져 있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방사성 물질 오염 가능성 등 안전성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는 "기장 앞바다는 청정해역으로 유명해 당시 수질은 전혀 문제될 사안이 아니었다"고 밝혔지만, 주민들이 마실 물이라면 사전에 주민 설득 같은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설 소유·운영권 문제를 놓고 면밀한 법률적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최근 부산시가 막힌 물길을 뚫겠다며 선택적 통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설 조기 인수가 검토됐지만 정작 법률자문 결과 당초 협약과 달리 '무상양여'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수담수화 시설은 국토진흥원이 주관해 국가연구개발의 수행과정에서 발생한 성과물이기 때문에 국유재산법상 국가 소유(행정재산)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2013년 12월 맺은 소유·운영 협약서상 핵심 내용의 오류가 4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파악된 것이다.

■계륵이 돼 버린 시설

현재 국토부는 무상양여 대신 위탁운영을 제안하고 있지만 부산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막대한 유지관리비를 부담해야 하고, 해수담수 수돗물 생산 단가도 t당 1187원(2014년 기준)으로 t당 883원(2016년 기준)인 기존 정수장(낙동강 수돗물) 단가보다 현저히 높기 때문이다.

당초 협약서에는 무상양여 시점인 내년 12월까지 정부가 후속 연구를 진행해 생산 단가를 낙동강 수돗물 수준으로 낮추기로 하고, 그동안 단가 차액은 국토진흥원이 부담하도록 돼 있었다. 이에 따라 부산시는 무상양여가 안 되면 제3자에 시설을 위탁해 운영을 맡기고, 협약 내용에 비추어 t당 883원 수준으로 수돗물을 구매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부산시가 공을 주고받는 사이 수돗물 생산과 공급 시기가 갈수록 늦어지면서 불필요한 시설 유지관리비만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사업자 측과 부산시가 유지관리비를 분담해 오고 있다. 지난 3년간 유지관리비로 들어간 시비만 34억 6000만 원에 달한다. 당초 계획대로 수돗물 생산·공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면 수돗물 단가에 반영돼, 추가로 들어가지 않아도 됐을 비용이다. 앞서 기장 해수담수화 시설 건립에는 국비 823억 원, 민자 706억 원, 시비 425억 원 등 1954억 원이 투입됐다. 완공 이후 3년간 해수담수화 시설에서 생산한 수돗물은 병입수 469만 3440병(5만 7000여t)에 불과하다. 하루 치 계획생산량 4만 5000t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간의 혼란 속에서도 부산시는 지난달 가덕도에 제2 해수담수화 시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루 30만t 생산 규모로 기장의 7배 수준. 기수담수까지 합치면 전체 사업비만 1조 2000억 원에 달한다.

먹는물부산시민네트워크 이준경 운영위원장은 "정부만 탓할 게 아니라 부산시도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에 대해 겸허하게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구체적인 협약 내용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