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터치] 깡깡이마을 재생엔 바다 냄새가 난다
/김태만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352만 시민이 319㎞의 해안선을 경계로 바다를 마주해 살고 있는 도시. 그래서인지 부산 시내 어디를 가도 짠 내가 배어 있다. 1876년 개항 이래 줄곧 바다로 먹고살아 온 도시답게 부산은 항만, 물류, 해양, 수산이 전체 산업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해양관광, 크루즈 등의 기타 서비스업까지 추가하면 비중은 훨씬 늘어날 것이다. 산업화 시대 국가 기간 항구로서의 기능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기 충분했고, 이제 물동량 2000만TEU를 넘어 세계 6대 항만의 지위를 굳혔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바다는 언제나 부산의 미래다.
시대정신은 우리에게 또다시 해양을 요구한다. 고착, 폐쇄, 권위, 질서, 규율, 안정을 원리로 하는 '육지적 사고'를 넘어 유동, 개방, 자율, 창의, 모험, 창조적 파괴를 존중하는 '해양적 사고'로의 전환 말이다. 바다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재인식되고 있다.
짠 내 가득한 부산 산업사의 축소판
영도 대풍포 깡깡이마을의 실험
쇠락한 도시공간의 해양성에 주목
공동체 복원·해양문화 재생도 성공
지난 3년간 부산시가 35억 원을 투입해 조성한 '예술상상마을만들기' 사업이 마무리돼 간다. 기존의 도시재생사업이 대부분 산복도로나 오지마을에 집중되었던 데 반해, 영도 깡깡이마을은 해변 공간이다. '감천문화마을'이 산상(山上)에 위치한다는 점과 정반대의 개념에서 출발한 사업이다. 선택은 옳았다. 영도 대풍포는 대한민국의 산업화 역사를 집약해 둔 캡슐과도 같은 곳이다. 일제강점기에서 6·25 전쟁을 거쳐 1960~80년대 고도경제성장기를 지나 사양에 이르는 부산 산업사의 축소판이다. 어로와 수산물 가공의 어촌, 철공소와 수리 조선의 조선공업, 억척스러운 '깡깡이 아지매'의 부산성(釜山性)이 농축된 '육지문화'와 '해양문화'가 교섭하는 공간이다. 부산은 바다에 존재했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바다를 건넌 사람들! 이들은 땅에서 밀려난 것도, 땅을 버리고 떠나온 것도 아니다. 바다는 원래부터 삶의 장(場)이었을 뿐이다. 140년 전만 해도, 부산에서 가장 핫(Hot)한 곳이었다. 낚싯바늘처럼 생겨 바람 피하기 좋은 '대풍포'. 조선을 강점한 일제(日帝)는 그 자그만 만을 매립하고 거주지와 상가를 조성했다. 다나카 조선소 등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이것이 목선에 동력을 장착한 배를 생산하는 근대적 조선소의 효시였단다. 대풍포는 일제 말까지 호황을 누렸다. 6·25전쟁이 터지고 월남한 실향민들의 집단거주지가 되었다가 그 후 오랫동안 수리 조선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한때는 낡은 배의 녹을 떼는 아지매들의 "깡깡깡" 하는 망치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철공소나 선용품점이 수백 곳에 달해 성황이었다.
산업도 사람도 세월의 퇴락을 피할 수는 없다. 나이 든 '깡깡이 아지매'들은 하나둘 은퇴했다. 수리 조선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주민들은 떠났다. 아이들 울음은 끊기고 노인들만 어두운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활기 잃은 도시가 되었다. 부귀와 영화는 기억 속에만 남았다.
그러나, '깡깡이예술마을만들기' 사업은 도시 공간을 성공적으로 재생시켰다. 가로등과 벽화로 마을을 훤하게 했고, 벤치나 화분, 가로수 등으로 미관을 정비했다. 오션뷰를 창조적으로 개선했고 도선 복원의 토대를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을 공동체의 복원으로 주민 간 소통과 공감이 증대했다는 점이다. 모름지기 마을의 주인은 주민이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한 덕분이겠지만, 깡깡이마을에서는 외부 활동가와 주민 간 갈등은 없다. 마을 공동체 복원이나 도시 공간의 해양성 재생은 이래야 한다.
해양공간의 도시재생 사례가 모범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할까? 첫째, 얼마나 풍부하고 다채로운 '해양문화'의 주름을 만들어 넣느냐이고 둘째, '해양문화의 창조와 향유'가 가능하도록 어떠한 프로그램을 담아낼 거냐이다. 이를 위해 '해양문화와 예술'에 관한 시민적 합의와 공감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육지적 사고'로는 블루오션을 창출할 수 없다. 부산의 미래는 '해양적 사고'로의 전환만이 담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