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쪽은 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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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해마다 1월 1일이면 여러 신문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모은다. 그러고는 아이스크림 핥듯이 조금씩 읽는 재미를 즐긴다. 국문학과 다니던 문청 시절부터 그랬으니 40년 가까이 된 버릇이다. 초록빛 물이 뚝뚝 듣는 듯한 말 '신춘'에다 어쩌면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가장 고급한 창작물이랄 수 있는 '문예'가 붙어 있으니 아직 추위가 매서워도 봄이 코앞에 온 듯한 기분까지 만끽한다. '개해'라고 다르랴.

하지만 짜증을 느낄 때도 있다. 군데군데 툭툭 튀어나오는 오자와 비문, 어색한 표현들 때문이다. 올해 신춘문예 단편소설 중에서 실제로 보자.

'…극장에서 상영될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상영될지 여부'는 풀어 쓰면 '상영이 되든지, 안 되든지'이다. 이 '경우의 수'를 합하면 100%가 되는 셈. 그러니 '상영 여부'는 불확실한 게 아니라 확실하다. '극장에서 상영될지도 불확실하다'라야 했던 것.

'쪽진 머리의 며느리 탈을 뒤집어 쓴 배우가 방귀를 뀔 때마다 박수를 치며 깔깔댔다.'

'쪽지다'라는 우리말이 없으니 '쪽진 머리'는 있을 수 없는 말. 쪽은 '시집간 여자가 뒤통수에 땋아서 틀어 올려 비녀를 꽂은 머리털. 또는 그렇게 틀어 올린 머리털'을 가리키는데, '찌다'라는 서술어와 어울린다. '찌다'는 '머리카락을 뒤통수 아래에 틀어 올리고 비녀를 꽂다'라는 뜻. 그러니 '쪽 찐 머리'라야 했다.

'…한 편의 장편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예산의 최소한도임에도….'

두 번 나온 토씨 '의'를 없애면 더 부드러운 문장이 된다. '장편영화 한 편 만드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 예산임에도'면 어땠을까. 일반적으로, 문장이 짧아지면 힘은 더 생긴다.

'머리 벗겨진 40대 중반의 아시아인….'

'벗겨지다'는 '덮이거나 씌워진 물건이 외부의 힘에 의하여 떼어지거나 떨어지다'라는 뜻. 그러니 누군가가 머리를 강제로 뽑았다는 얘기가 된다. 머리카락이나 몸의 털 따위가 저절로 빠지는 건 '벗어지다'라야 했다.

'때문에 이 옷차림으로 폴이 오디션장에 나타났을 때….'

'때문'은 의존명사이므로 문장 첫머리에 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이 때문에'처럼 의존할 말이 반드시 먼저 나와야 한다.

말석이지만 이제 문단에 들었으니, 새내기 문인들이여, 우리말을 갈고 다듬고 바르게 부리는 데 더욱더 애써 주시라.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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