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칼럼] 해양이 프레임 전쟁에서 이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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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평택대 국제물류학과 교수

2017년이 저물고 있다. 다사다난한 한 해였지만, 해양 분야에서도 환호와 탄식이 교차한 한 해였다.

1974년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부두인 자성대부두를 만들어 본격적인 컨테이너항만으로 성장한 부산항이 마침내 2000만 개의 컨테이너를 처리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인천항도 컨테이너 300만 시대를 열며 선방했다. 한국해양진흥공사 추진, 스마트 양식과 해양바이오 육성, 수산물 이력제 활성화 등 해양 분야에서도 활발한 성과가 이어졌다.

해양 분야 성과에도 국민 시선 냉담
사건·사고 중심으로 해양 인식한 탓
뒤치다꺼리 어젠다에 허덕이지 말고
융·복합적 해양 어젠다 먼저 개발을


정치적 환경도 호전되고 있다. 재조해양(再造海洋)의 절박한 각오를 토로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 글로벌 해양강국 추진을 강조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의 다짐에서 희망을 엿본다.

하지만 해양강국의 꿈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에도 해양은 불신과 실망을 받는 '말썽꾸러기'라는 오명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한진해운 파산 등의 파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데다 바닷모래 채취 파동, 낚싯배 사고 등으로 국민의 차가운 시선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조직, 인사, 정책, 예산, 문화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뒤에도 크게 바뀌지 않은 조직과 인사, 분절적이고 파편적인 정책의 존속, 합병과 해체를 반복한 조직의 문화적 혼란 등이 국민적 지지와 환호를 받는 데 실패한 주원인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해양이 줄곧 '프레임 전쟁'에서 패배한 데도 한 원인이 있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발표한 프레임 이론(Frame theory)에서 프레임이란 현대인이 정치적·사회적 의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본질과 의미, 사건과 사실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직관적 틀을 뜻한다. 같은 사람이라도 각각 '범죄자'와 '용의자'라는 용어를 쓰면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진다. 세월호 객실에서 빼낸 지장물(쌓인 물건더미)을 씻다가 발견된 3㎝ 정도의 뼈 1점에 대해 '뼛조각'이라는 표현보다는 '유골'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도 '은폐'라는 인식을 더욱 주기 때문으로 설명된다.

해양은 일반인에게 공간적, 시간적, 심리적 이격성이 있어 국민적 관심과 인식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해양 분야 양대 산맥인 해운항만과 수산은 '경제적 의제'를 나름대로 열심히 생산했지만, 결국엔 사건 사고 등 '사회적 의제'가 주로 인식되고 있다.

해양이 프레임 전쟁에서 이기는 법은 무엇일까. 해양의 가치와 정체성을 담은 프레임을 만들고, 지속해서 개발해야 한다. 많은 이슈와 영역을 해양의 가치로 해석하고,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상식으로 녹여내야 한다. 해양의 프레임을 행동으로 반복할 때 국민의 인식도 변한다.

구체적으론 뭘 해야 할까. 해양에 대한 철학과 국가 어젠다를 굳건하게 수립해야 한다. 짙은 호소력을 줄 수 있는 5대 해양강국, 동북아 물류중심, 세계 해양수산의 허브 등 국가 비전을 설정해 구체적인 사업을 집행하고, 생생한 어젠다를 만들어야 한다. '그들만의 잔치'에서 벗어나 타 분야로, 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끝없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많은 이슈와 영역에서 연계해야 한다. 해양은 기능적인 개념이 아니라 공간과 영역의 개념이다. 해양의 공간에는 금융, 무역, 제조업, 서비스업 등 모든 산업이 공존하고 있다. 문화, 환경, 안전, 인문, ICT(정보통신기술) 등 다른 기능도 함께 있다. 이들 타 분야와 연계해 융복합 비즈니스를 만들고, 기능적 협력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와 산업계, 학계, 연구계 등이 개별적으로 또는 협력해 해양 이슈를 만들어내고, 확산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전문가와 일반인이 협력하여 융·복합적으로 해양 어젠다를 창조해야 한다. 2013년 해양수산부가 부활한 이후 지금까지 해양은 추종적이고 사후해결적 어젠다에 휩쓸려왔다. 2018년에는 선제적이고 선도적인 해양 비전을 마음껏 펼치는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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