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신춘문예-희곡] 비듬/이유진
등장인물
원장 (34, 여)
용식 (35, 남)
하나 (30, 여)
무대
평범한 동네 미용실이다. 수건과 미용 도구들이 이곳저곳 널브러져 있다.
출입문이 조금 열리다 멈춘다. 원장은 그 사이로 몸을 반쯤 집어넣은 채 고장난 문을 열려고 애쓴다. 몇 번의 애처로운 퍼덕임 끝에 문이 거칠게 열린다. 원장은 널린 수건을 주워 긁힌 바닥을 닦는다.
원장 사람을 부르든가 해야지 원. 이러다 바닥만 아작 나겠네.
원장은 불을 켜고 청소를 한다. 전화벨 소리. 원장이 통화하는 동안 용식이 열린 문으로 조심스레 들어온다. 용식은 목까지 내려오는 더벅머리에 품이 큰 정장을 입었다.
원장 투게더 미용실입니다. 네, 네, 전데요. 그럼요. 당연히 영업하죠. (끊긴 전화를 보고) 뭐야 예의 없이.
용식 저기.
원장 엄마야!
용식 안녕하세요.
원장 누구세요?
용식 손님인데요.
원장 어머 내 정신 좀 봐, 어서 오세요.
용식 아, 예.
원장 아니, 그렇게 귀신처럼 들어오시니까 놀랐잖아요. (자지러지게 웃는다) 저 엄청 웃겼죠? 아니, 갑자기 웬 이만한 머리가 앞에 있으니까
용식 예.
원장 어머 죄송해요. 그렇다고 머리가 이만하시다는 건 아니고, 머리카락이 그렇다고요. 헤어스타일이.
용식 좀 길죠.
원장 커트하시게요?
용식 아니요.
원장 펌?
용식 아니요.
원장 컬러구나. 색상 보여드릴까요?
용식 저 그게 아니라
원장 일단 여기 앉으시겠어요? 수건만 놓고 올게요.
용식, 가운데 의자에 앉는다. 원장은 수건들을 걷어 창고에 대충 던져두고 나온다. 용식, 벌떡 일어선다.
용식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원장 왜 그러세요?
용식 가운데는 너무 주목받는 것 같아서요.
원장 그럼 이쪽에 앉으세요.
용식 (앉으며) 어색하네요.
원장 어색할 게 뭐 있나요. 여긴 대부분 혼자 오세요.
용식 대화요.
원장 네?
용식 대화가 어색하다고요.
원장 낯가리시나 보다.
용식 혼자 지낸 지 오래됐거든요.
원장 그러시구나. 뭐 요즘은 혼밥, 혼술, 혼결까지. 뭐든 혼자가 유행이잖아요.
용식 아, 예.
원장 머리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용식 딱히 뭘 하려는 건 아니고요.
원장 편하게 말씀하세요.
용식 비듬이요.
원장 비듬?
용식 비듬이 많이 생겨서요.
원장 클리닉 하러 오셨구나.
용식 비듬 타파, 두피 클리닉 삼만 원이라고 쓰여 있던데요.
원장 어? 그런 거 없는데.
용식 분명 봤어요.
원장 아아, 혹시 1년 전쯤?
용식 아마도요.
원장 오픈 이벤트로 잠깐 했었어요.
용식 지금은 안 되나요?
원장 그렇긴 한데 처음 오셨으니 그냥 해드릴게요.
용식 예.
원장 근데 기억력 좋으시네요.
용식 밖으로 잘 안 나와서요.
원장 1년 동안 안 나오신 건 아니잖아요.
용식 맞아요.
원장 아…… 그러시구나.
용식 이상한가요.
원장 아뇨. 뭐 요즘은 집순이 집돌이가 유행이니까요. 일단 상태부터 볼게요.
원장이 머리를 보러 다가오자 용식은 벌떡 일어난다.
원장 이쪽도 별로세요?
용식 너무 일찍 왔네요.
원장 아니에요.
용식 준비도 덜 하신 것 같은데.
원장 수건만 털면 되니까 괜찮아요.
용식 아, 예(앉는다).
원장 머리 볼게요.
용식은 바짝 긴장한다. 미용사는 머리에 가까이 갔다가 악취 때문에 인상을 구긴다. 손으로 건드리려다 차마 만지지 못한다.
원장 두피가 상할 수 있으니 위생 장갑 착용할게요.
용식 예.
원장 (장갑을 끼고 머리를 본다) 어머, 두피가.
용식 어떤가요?
원장 썩, 썩었어요.
용식 썩다니요?
원장 커트부터 하셔야겠어요.
용식 얼마나요?
원장 아예 삭발을 해버리시는 게.
용식 안 돼요.
원장 지금 클리닉이 문제가 아니에요.
용식 그냥 클리닉만 해주세요.
원장 이대로는 클리닉을 해줘도 아무 소용없어요.
용식 그래도 비듬 때문에 머리를 다 민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원장 이 두피 상태가 더 말이 안 돼요.
용식 삭발은 싫습니다.
원장 얼마나 되셨죠?
용식 반년쯤 됐겠네요.
원장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용식 작년부터 머리를 잘 안 감았거든요. 혼자 있는데 굳이 물 낭비할 필요 없잖아요.
원장 자세히 볼게요.
용식 네.
원장 많이 긁으셨나 봐요. 피딱지도 많고
용식 간지러워서요.
원장 계속 이렇게 두시면 비듬이 문제가 아니라 상처가 덧나서 모낭염과 탈모로 진행될 거예요. 치료받으셔도 재발할 거고요.
용식 비듬만 없으면 돼요.
원장 비듬이 클리닉 한 번으로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용식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요.
원장 쉽게 설명해드릴게요. 변기에 똥이 가득 차 있어요. 그래서 구더기가 잔뜩 생겼단 말이에요? 이 구더기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용식 구더기를 치워야죠.
원장 아니죠. 똥이 있으면 구더기는 또 생기잖아요. 변기를 아무리 청소해도, 구더기를 계속 퍼내도 똥 때문에 구더기가 다시 생긴다고요. 그러니 똥을 치워야죠. 똥을!
용식 제 머리가 똥이란 말씀인가요?
원장 예를 들어서요.
용식 네.
원장 일단 똥부터 치우고 변기를 청소해야죠.
용식 머리를 자르고 클리닉을 받으란 거죠?
원장 그렇죠!
용식 안 돼요.
원장 두피가 쾌적한 환경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데 이 상태로는 도저히 불가능해요.
용식 클리닉만 해주세요. 삭발은 정말 안 돼요.
원장 저도 안 돼요. 헛수고에요.
용식 (생각하다) 그럼 조금만.
원장 조금만 남기고 다 잘라야 해요.
용식 괜찮을까요?
원장 자르고 꾸준히 관리 받으시면 좋아지실 거예요.
용식 제 얼굴 말입니다.
원장 그럼요.
용식 아무리 혼자 지낸다고는 하지만 자기만족이란 게 있잖습니까.
원장 두상이 작으셔서 잘 어울릴 거예요. 삭발도 요즘 유행이잖아요.
용식 유행하는 게 참 많네요.
원장 그렇죠.
용식 아무리 유행이래도 삭발은 안 돼요.
원장 (한숨) 그럼 반삭 정도는 어때요.
용식 군인처럼?
원장 비듬 잡아야죠.
용식 나이 먹고 머리 짧게 잘라본 적이 없어요. 창피하지만 군대도 면제였거든요.
원장 금방 자라요.
용식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어요?
원장 네.
용식 결정했습니다. 혼자 지내다 보면 결정도 빨라지거든요.
원장 자르실 거죠?
용식 단 해병대 스타일로요.
원장 알겠습니다.
원장, 용식의 몸에 커트 보를 두른다.
용식 확실해요?
원장 뭐가요.
용식 잘 어울릴 거라는 거.
원장 네!
용식 정말이죠?
원장 지금보다는 나을 거예요.
용식 상술 아니죠?
원장 자를게요.
원장, 머리를 자르려 한다.
용식 저기요.
원장 네.
용식 문은 닫아 주시면 안 될까요?
원장 고장 났어요.
용식 누가 갑자기 뛰어들면 어쩌죠?
원장 저 가위 들고 있어요.
용식 무서운 사람들이 많잖아요.
원장 알겠어요.
원장, 힘껏 문 닫고 다시 머리 자르려 한다.
용식 잠시만요.
원장 안 자르실 거예요?
용식 해병대에요. 육군이 아니라.
원장 알아요!
용식 공군도 아니고요.
원장은 심호흡하고 이발하기 시작한다. 머리카락보다는 개털을 깎는 느낌이다. 바닥으로 떡이 진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떨어진다. 대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붉은 두피가 보이고 용식의 얼굴도 드러난다.
원장 근데 되게 일찍 오셨네요.
용식 인터넷에 오픈 열 시라고 나와 있길래 일부로 삼십 분 늦게 왔어요.
원장 그러시구나. 오픈 맡은 지 얼마 안 돼서 자꾸 지각이네요. 원래는 전남편이 했었거든요.
용식 예.
원장 습관이 참 무서워요. 이혼한 지 두 달이나 지났는데.
용식 그런 이야기를 막 해도 되나요? 못 들은 거로 할까요?
원장 뭐 어때요. 미용실이 그런 이야기 하는 곳이지.
용식 그래요?
원장 그럼요. 여기서는 뭐든 얘기해도 돼요.
용식 뭐든?
원장 대나무 숲 같은 곳이잖아요. 동화에서도 보면 임금님의 비밀을 안 사람은 미용사였죠.
용식 모자 만드는 사람이었죠.
원장 그래요?
용식 예.
원장 미용사로 알고 있었는데.
용식 삼국유사에 실린 신라 제48대 경문왕 이야기와 아리스토파네스의 마이더스 왕 이야기가 섞인 것 같네요. 삼국유사에서는 모자 만드는 사람 즉 복두장이가 도림사 쪽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죠. 마이더스 왕 이야기에서는 이발사가 나오긴 하지만 대나무 숲이 아니라 갈대밭에서 외치고요.
원장 아까부터 느낀 건데요. 어색하시다더니 말씀 참 잘하시네요.
용식 아, 예.
원장 그쪽 일 하시나 봐요?
용식 아뇨. 일은 영상편집 쪽인데. 혼자 있다 보면 시간 낭비하지 않으니까 다양한 지식을 쌓을 수 있죠.
원장 그러시구나.
용식 위키 백과가 참 재밌거든요.
원장 재밌겠네요.
용식 궁금한 게 있는데요.
원장 네.
용식 저걸로 제 머리도 닦나요?
원장 네?
용식 구석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던 수건으로 제 두피를 클리닉 하냐고요.
원장 (당황하며) 아뇨, 살균해야죠.
용식 터는 게 살균인가요?
원장 햇, 햇볕에 말려야죠.
용식 전 뭘 쓰죠?
원장 미리 해둔 거 있으니 걱정 마세요.
용식 이해해주세요. 사람은 믿을 게 못 되잖아요.
쇳소리 나며 문이 열리고 하나가 뛰어들어온다.
원장 어서 오세요.
하나 언니!
원장 누구
하나 저에요! 코코살롱에 계실 때 자주 갔었는데
원장 음 (생각하려고 애쓴다) 음, 그
하나 하나요! 최하나!
원장 어머 하나 씨!
하나 찾느라 힘들었어요.
원장 날 찾아왔어요? 혹시 아까 전화한 것도
하나 급해요. 머리 좀 해주세요.
용식 저기요.
원장 네?
용식 가려운데요.
원장 하나 씨, 미안한데 잠시 기다릴래요? 여기 손님도 급하셔서.
용식 급하다 한 적은 없어요.
하나 세 시가 결혼식이에요.
원장 여기 금방 끝내고
하나 제 결혼식이에요. 언니, 저 너무 급해요.
원장 앉아요.
하나, 가운데 의자에 앉는다.
원장 손님.
용식 전 참으면 되죠 뭐.
원장 커트는 끝났고 간지러우시다니 스케일링 약 먼저 도포해드릴게요.
용식 그게 뭐죠?
원장 청소하기 전에 곰팡이 제거제 뿌리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용식 아, 예.
원장 잠시만요.
원장, 가게 창고로 간다.
용식, 하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하나 양보해주셔서 감사해요.
용식 아, 예.
둘은 멍하니 앞만 본다.
하나 오늘 날씨 참 좋죠?
용식 비나 왔으면 좋겠네요.
원장이 약을 섞으며 나온다.
원장 차갑습니다. (약 바르며) 머리는 어떻게 해줘요?
하나 모르겠어요.
원장 원하는 스타일 없어요?
하나 이것저것 다 해 봤는데, 아오 난 소질이 없나 봐요.
원장 샵을 안 잡았어요?
하나 당연히 잡았죠!
원장 근데 왜
하나 강남에 에이치 알죠. 거기 유명하잖아요. 연예인도 많고.
원장 알죠.
하나 오늘 예약해뒀는데 뭔가 촉이 안 좋은 거예요. 혹시나 해서 어제 미리 받아 봤는데 엉망진창인 거 있죠. 삼십이나 하면서.
원장 어머, 그래서.
하나 당장 결혼식이 다음 날인데, 차라리 내가 하자 싶어서 밤새 머리만 했어요.머리만 스무 번은 감았을 거야. 망했다 하고 있는데 언니 생각이 딱 나더라고요.
원장 그러니까 부담스러운데.
하나 언니 실력은 내가 알아요. 코코 있을 때 얼마나 자주 갔는데요.
용식 저기요.
원장 네.
용식 제 머리 하실때는 집중해주시면 안 될까요. 잘못 바르실까 봐 불안해서요.
원장 다 발랐어요. (헤어 캡을 씌우고) 이대로 삼십 분 방치 해두면 돼요.
용식 방치는 조금 심하지 않나요?
원장 방치는 약이 흡수되길 기다린다는 미용 용어에요.
용식 저기요.
원장 또 왜요.
용식 이거 다른 색깔은 없나요? 너무 촌스러운데.
원장 없어요. 기다리세요.
용식 아, 예.
원장과 하나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웃는다. 원장은 하나의 머리카락을 관찰한다.
원장 식장까지 얼마나 걸려요?
하나 한 시간 정도요. 근데 최대한 빨리 가야 해요.
원장 알겠어요.
하나 가서 메이크업 수정하고
원장 알아요. 나도 해봤어.
하나 (가방에서 화관 꺼낸다) 이거 쓸 거고요, (휴대폰 보여주며) 드레스는 이거.
원장 어머 예쁘다.
하나 예쁘죠! 이거 고른다고 드레스 샵만 스무 군데를 돌았어요.
원장 넥라인이 깊어서 머리 푸는 게 어울리겠네요. 화관에도 어울리고.
하나 맞아요. 올림머리가 안 어울려서 일부러 이렇게 골랐어요.
원장 일단 지금 머리가 너무 상해서 최대한 영양이랑 윤기를 공급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상태로는 어떤 웨이브를 넣어도 안 예뻐.
하나 언니만 믿을게요.
원장은 다시 창고로 간다. 용식이 하나의 휴대폰을 힐끔 본다.
하나는 용식을 의식하고 휴대폰 보여준다.
하나 예쁘죠.
용식 그런 걸 잘 몰라서.
하나 우리 신랑도 그러더라고요. 그런 거 잘 모른다고. 근데 네가 정말 예쁜 건 잘 안다고. 어쩜 말도 그렇게 감미롭게 하는지.
용식 식전이잖아요.
하나 에이.
용식 사람 믿지 마세요.
하나 우리 신랑은 믿을 만한 사람이에요.
용식 전 부모님한테도 돈 떼였어요. 상황은 사람을 바꾸죠.
하나 너무 부정적이시다.
원장 나온다. 하나의 머리에 에센스를 잔뜩 발라 툭툭 쳐서 흡수시킨다.
원장 내가 개발한 응급처치 에센스인데 이틀은 찰랑거릴 거예요.
하나 고마워요 언니.
원장 갈 때 챙겨줄 테니까 신혼여행 가서도 쓰고.
하나 언니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원장 떨리죠?
하나 죽겠어요. 결혼이라는 게 참
용식 결혼을 왜 하시죠?
하나 그야 좋으니까 하죠.
용식 잘 생각하세요.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원장 이제 머리할게요.
하나 우리 신랑을 못 보셔서 그러는데
용식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둘인 게 문제죠.
하나 그게 왜요?
용식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에 하나여야 해요.
하나 재밌네요.
용식 혼자일 때 비로소 진정한 인생을 느끼죠.
하나 전 혼자 있기 싫어서 결혼하는 거예요. 둘이서 그 뭐냐, 그래! 어려운 인생의 문제들을 헤쳐 나가는 거죠.
용식 혼자라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를 둘이서 해결하는 거죠.
하나 어떻게 평생을 혼자 살아요. 그렇죠?
원장 그, 그렇죠.
용식 사람은 외로움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요.
하나 전 외로움이 죽을 만큼 싫은데요.
용식 사람은
하나 아니, 제가 그렇다고요. 제가 둘이 좋다는데 뭐 자꾸 사람은 사람은.
원장 하나 씨, 그래서 에이치에서는 어떻게 됐어요?
하나 처음엔 예쁘다고 우기더니 결국 환불해줬어요. 제가 한 성깔 하잖아요. 다 엎어버리려고 하니까 해주더라고요.
원장 그랬구나.
용식 것 보세요. 사람은 서로 공격만 해요.
하나 결혼 못 하셨죠?
용식 안 했는데요.
하나 그럴 것 같았어요.
용식 유치하시네요.
하나 그쪽도요.
용식 저는 그쪽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
하나 전 조언이나 명언 따위 구한 적 없어요.
용식 그 어떠한 것도 하나일 때 가치 있는 법입니다. 위대한 것들은 다 하나죠. 달, 별, 시, 해, 심지어 글자 수도 하나에요. 물, 땅.
하나 즐.
용식 유치하시네요.
하나 그럼 훈계하지 마세요.
용식 제가 너무 늦게 깨달은 게 후회스러워서 그래요. 전 아무도 이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거든요. 진정한 행복은 고독 속에서 옵니다. 어릴 때부터 세뇌를 당해서 급변하기 어려울 거 알아요. 저도 그랬어요. 한글 떼기도 전에 짝꿍 먼저 정하는데 어떻게 세뇌를 안 당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전 더러운 인간들을 많이 만나봐서 깨달았어요. 조금 더 일찍 깨달았으면 시간 낭비, 마음 낭비 안 했을 텐데 말이죠. 전 세상과 단절하고 혼자 삽니다. 이제 고작 1년밖에 안 됐지만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꼈어요.
하나 저도 지금 아주 행복합니다.
용식 요즘은 혼자서 모든 걸 할 수 있잖아요. 아까 뭐라 그랬어요. 혼밥, 혼술, 혼결이 유행이라고 했잖아요. 혼결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원장 혼자 하는 결혼이요.
용식 많은 사람이 깨달음을 얻었군요.
하나 사이비에요?
용식 요즘은 혼자 무언가 할 수 없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입니다. 더불어, 함께 이런 거 다 옛말이라고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행복을 자연에서 찾을 수 있어요.
하나 자연인이야 뭐야. 그럼 숲에서 사시던가요.
용식 그러고 싶습니다.
하나 제가 좋은 날이라서 참겠는데요.
용식 보세요. 좋은 뜻으로 말을 해도 결국 싸움이 되지 않습니까.
하나 댁이 뭔데 이래라저래라 훈계에요?
용식 미용실이 그런 곳 아닙니까? 그렇죠?
원장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용식 여긴 대나무 숲이자 갈대밭입니다.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는 공간이요.
하나 전 듣고 싶지 않으니까 그만하실래요?
용식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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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류지혜 기자 bridy@bus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