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우리 모두의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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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를 찾고 있는 김의 아이 시절 모습.

얼마 전 벨기에에 사는 입양인 친구, 김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김은 부산의 한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세 살 때 벨기에로 입양된 입양인이다. 그녀가 이메일을 보낸 이유는 부산 출신의 또 다른 입양인을 내게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친부모를 찾길 원하니 미리 자료 조사를 해 달라는 거였다. 김의 부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김을 통해 해외 입양인을 여럿 만났고, 그때마다 그들과 함께 부산시청과 보육원 등을 방문했다.

벨기에 입양인 친구 김의 부탁
또 다른 입양인 부모 찾기 도움
보육원, 시청 등 기록 수소문
소통이 되지 않는 시청 직원 답답
중년 입양인의 간절함 느껴져

친구 김은 5년 전에 친모와 상봉했다. 당시에 김을 돕기 위해 내가 시청을 찾아가 서류들을 확인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요보호자 수용 의뢰서'와 '상담 조서'에서 그녀의 부모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양육할 수 없었던 그녀의 엄마가 경찰서에 아기를 맡기면서 개인정보를 또박또박 남겨 놓은 것이었다. 김은 매우 운이 좋은 경우였다. 부모에 관한 정보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이후의 과정에서 친가족이 기꺼이 상봉 의사를 밝혀 주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친구 김이 소개한 입양인의 이름 역시 김이었다. 성이 아니라 이름이 김이다. 친구 김을 처음 알게 된 이후 그동안 여러 명의 김을 만났다. 모두 1970년대와 80년대에 벨기에와 프랑스로 떠난 입양인들이었다. 왜 모두 이름이 같을까. 아기를 입양할 당시에 양부모들이 영어의 마이클이나 존처럼, 한국에서는 김이 대중적인 이름일 거라고 짐작했던 것 같다.

이번에 소개받은 김은 1970년에 벨기에로 입양된 남성이다. 김 델브라시네(Kim Delbrassinne). 홀트 입양 서류에 다음의 정보가 적혀 있다.

이름:김철수. 생년월일:1966년 3월 30일. 1966년 4월 8일 부산시청에서 성모보육원으로 보호 조치. 1970년 3월 12일 성모보육원에서 홀트로 이동. 1970년 8월 벨기에 델브라시네 부부에게 입양됨.

입양 서류에 남겨진 아기 이름과 생년월일은 대부분이 보육원에서 만들어진다. 시청을 방문하여 발견 당시에 작성된 서류를 보고, 이름과 생년월일의 진위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이다. 최초 발견지나 발견자 정보도 알아야 한다.

전화로 예약한 후 반송에 위치한 옛 성모보육원을 찾아갔다. 김으로부터 미리 받아둔 개인정보 열람 허가서를 제출하자, 싯누렇게 변색한 오래전의 서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보육원 입소 시기와 경로 등이 홀트의 기록과 일치했다. 새로운 정보가 없었다. 다만, 서류 하단에 흑백사진 한 장이 남아 있었다. 앞으로 김이 더없이 소중하게 간직하게 될, 첫돌 무렵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그날 오후에 부산시청의 여성가족국을 방문했다. 업무 담당자가 자주 바뀌더니 이번에도 새로운 얼굴이었다. 염려했던 대로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았다. 내가 건넨 서류에 적힌 이름과 생년월일로 전산 조회를 해서 '아동카드'를 출력해 줄 뿐이었다. 보육원 기록으로 만들어진 아동카드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 발견 당시의 서류를 확인해야 한다고 읍소했다. 추가 업무라며 불평하는 담당자를 설득해 지하층의 기록관으로 향했다. 1966년 3월 30일 전후로 발견된 신생아 남아에 관한 정보를 찾아야 했다. 결국, 더 이상의 서류는 찾을 수 없었다.

벨기에의 김이 첨부파일로 보내온 현재 모습의 사진을 바라본다. 쉰 살을 훌쩍 넘긴 한 입양인 남성의 간절한 마음이 읽힌다.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불러오는 세상의 이치를 다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이 땅을 떠나야 했던 김이,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김들이라는 사실은 알 것 같다.

황은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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