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사투리가 제가 넘어야 할 첫 '허들'이었죠."

배우 정우성(44)이 영화 '강철비'(14일 개봉)를 들고 스크린 나들이에 나섰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북한의 최정예요원 '엄철우'로 변신했는데 그 모습이 꽤나 흥미롭다. 말투는 물론 눈빛이나 표정까지 자신을 완벽하게 '북한 사람'으로 녹여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북한 내 쿠데타로 권력 1호가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뒤 한반도엔 비상이 걸린다. 북의 권력 투쟁 속에서 일촉즉발 '핵전쟁' 카운트다운에 돌입하게 된 것. 이런 상황에서 엄철우는 한국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와 함께 전쟁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탈북자 출신 자문가 지도 받아
"곽도원과는 이제 각별한 사이"

■정우성표 '북한 최정예요원'

정우성이 그린 엄철우는 겉으로는 조국과 당에 무조건 충성하는 우직한 군인이다. 하지만 속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믿고 아끼는 속 깊은 인물. "남조선의 '지디'라고 아느냐"고 묻는 딸아이에게 "안 듣겠다고 당장 말하라"고 윽박지르지만, 한국에서 만난 곽철우에게 "지디라고 아오? 남조선에서 유명하다던데"라고 물으며 딸을 떠올린다. 부대찌개 집이 즐비한 거리에선 "남조선은 전쟁하겄다고 부대 진짜 많이 만들었고나"라고 말한다. 정우성은 이런 엄철우의 모습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그는 엄철우에 대해 "투박하면서 순수한 마음을 가진 캐릭터"라고 말한다. "살갑게 표현하는데 서툴지만 그 마음을 간직한 인물이에요. 딸아이를 대하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죠. 아이가 없어 '부정'이 어떤 느낌인지는 몰라 마음에 중심을 두고 연기했어요. 어릴 적에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노총각으로 나이를 먹어가고 있네요. 하하."

■북한 사투리 '열공', 상당히 공들여

정우성표 '북한 사투리'도 인상 깊다. 그는 '흉내'가 아닌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북한 다큐멘터리와 70~80년대 북한 영화를 섭렵하는 등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이 뿐 아니다. 실제 탈북자 출신 자문가의 지도까지 받았다고 털어놓는다. 그래서일까. 극 중 "위원장 동지 잘못되면 그땐 전쟁판이오!"라고 외치는 그의 모습은 진짜 '인민군'같다. 그는 "액션보다도 북한말을 풀어내는데 애썼다"고 귀띔한다. 그러면서 "평안도와 평양 사투리도 달라서 그 부분까지 차이를 두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곽도원과의 호흡도 일품이다. 두 사람은 이번 작품으로 '아수라' 이후 재차 의기투합했다. 평소에 동갑내기 친구인 그를 '꽉꽉이'란 애칭으로 부른다는 정우성은 "각별한 사이가 됐다"고 털어놓는다. 이런 관계는 두 사람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데 도움이 됐다고. 실제로 극 중 차를 함께 타고 가는 장면은 계산하지 않고 리액션으로 풀어냈다고 한다. "곽도원 씨가 저를 더 많이 사랑한다고 했지만 알고 보면 반대인 것 같아요. '아수라'에서 호흡을 맞추고 얼마 후에 이번 작품을 찍었죠. 그 신뢰도와 감정선이 '강철비'에서 정점을 찍어서 빛을 발했어요. 참 재능 있고 매력적인 친구예요."

■"함께 수갑 차고 국수 먹는 장면 짠해"

정우성은 인상 깊은 장면으로 엄철우와 곽철우가 함께 국수 먹는 신을 꼽았다. 한 손에 수갑을 나눠 차고 "우리는 한 편이다"라고 말하며 나란히 앉아 국수를 먹는 모습을 그는 "짠한 장면"이라고 털어놓는다. '수갑'은 옆에 붙어 있어야 찰 수 있지만 반대로 마음의 거리는 멀어지는데, 이는 마치 군사분계선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고. 허겁지겁 국수를 먹다가 "깽깽이 국수가 참 맛있다"고 말하는 엄철우의 말을 곽철우가 못 알아들었을 때에는 서글프면서도 묘한 느낌을 준다.

지난 1994년 영화 '구미호'로 스크린에 데뷔한 정우성은 올해로 데뷔 24년을 맞았다. "북한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해봐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어려운 때를 지나면 '낭만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관객들이 멜로 같은 말랑말랑한 영화도 즐겁게 볼 수 있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어요." 남유정 기자 bstoda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