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문제' 역사가 외면한 위대한 여성들의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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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문제/재키 플레밍

'교양 있는 남자들의 우아한 여성 혐오의 역사.' 부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책은 올해 환갑을 넘긴 영국 런던 태생 페미니스트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재키 플레밍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여자라는 문제>다.

'여성을 철저하게 배제해 온 주류 역사가 여성들을 더욱 무력하게 만드는 의도적인 문화 기제라는 것을 깨닫고 기나긴 세월 동안 여성이 쌓은 무수한 업적이 버려진 '역사의 쓰레기통'에 담긴 이야기를 오늘날 세대에게 알리겠다는 목표'로 책을 펴냈다는 저자. 그는 역사책 속에 지워져 버린 수많은 여성들을 오늘날로 불러낸다.

예컨대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철학과 음악, 문학 등 다방면에 걸쳐 탁월한 재능을 보인 중세시대 성직자이자 로마 가톨릭교회 성인이다. 여성으로 이름을 알리기 힘들었던 중세시대 재능만으로 이름을 남긴 경우지만 역사책에서 본 경우는 거의 없다. 흑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시집을 출간했던 시인 필리스 위틀리도 마찬가지. 그는 남성 전문가 18명으로부터 실제로 시를 썼는지 검증을 받아야 했다. 에밀리 뒤 샤틀레는 근대 최초의 여성 과학자로 꼽히는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수학자지만 볼테르의 연인으로 주로 알려졌을 뿐이다. 에미 뇌터는 추상 대수학의 황금시대를 연 독일 수학자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위나 임금도 받지 못했다.

이처럼 수많은 여성의 업적이 외면된 데는 역사적으로 이름난 과학자와 소설가, 철학자 등의 발언과 무관치 않다. '늘 집에만 머무르는 여자의 성취는 남자들의 성취에 비하면 하잘것없으니 이는 곧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증거'(다윈), '성취를 위한 어떤 여자의 어떤 시도도 부질없는 짓'(모파상), '여자는 '몸만 큰 아이'로 어린아이와 남자의 중간쯤 되는 존재'(쇼펜하우어) 등의 성차별 발언은 서글플 정도다. 하지만 저자는 이같은 노골적인 발언도 한껏 비튼다. 불온하면서도 유쾌한 글과 그림은 여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충분하다.

'페미니즘'이라는 화두가 우리 사회에 던져진 지 2년여가 지났지만 여성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그리 달라지지 못했다. 바뀐 게 없는데도 피로감을 호소하고 역차별 운운하는 건, 주류의 시선으로 여성이 여전히 규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의 쓰레기통'에 잠자고 있는 여성들을 적극 발굴해낸다면 사정은 좀 달라질 수 있을까. 재키 플레밍 글·그림/노지양 옮김/책세상/136쪽/1만 2000원.

윤여진 기자 only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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