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타적 유전자를 깨워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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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균 라이프 부장

올해 기부 상황이 좋지 않다. 기부 성수기인 연말을 맞았는데도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손길이 예전 같지 않아 안타깝다.

매년 후원받은 기부금으로 저소득층에 연탄을 지원하는 연탄은행 곳간은 텅텅 비게 생겼다. 겨울 연탄 기부가 절반 정도 감소했고 전체적으로는 지난해보다 10% 정도 후원이 줄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연탄은행이 지원하는 취약 계층에게 연탄이란 겨울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다. 이들에게 연탄 한 장은 한기 가득한 방을 데우고 음식을 조리해 먹도록 하는 생명줄이 될 수도 있는데 걱정이다.

올해 기부 상황 상당히 열악
'기부 관심 없다' 추세 늘어
사회 구성한 개인 서로 연계
공감 없는 공동체 미래 없어

올해 국내 대기업이 내는 기부금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최근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 스코어가 국내 매출 기준 상위 500대 기업 중 기부금 내용을 공시한 257곳의 올해 1~3분기 기부금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올해 대기업의 기부금 집행 규모는 978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 1299억 원보다 1511억 원이나 감소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기부금을 70% 이상 줄인 곳도 상당수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500대 기업의 영업이익은 38.1%나 증가해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올해 기부가 줄어든 원인으로 최순실 사태, '새희망씨앗 사회복지단체'와 소위 '어금니 아빠'로 불린 이영학 사건 등을 꼽는다. 적합한 분석이다. 그런데 기부 감소에는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7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기부 위축이 점진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알려준다.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기부를 못 한 이유를 보면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라는 답변이 57.3%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이 수치는 2년 전보다 오히려 6.2%포인트 줄었다. 관심을 둬야 할 답변은 '기부에 관심이 없어서'라는 부분이다. 응답자 중 23.2%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는 2년 전보다 8%포인트나 높아진 수치다. '앞으로 기부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감소 경향을 보였다. 2013년에는 응답자 중 48.4%가 '기부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지만, 2015년엔 그 비율이 45.2%로 감소했고 올해는 41.2%로 더 줄었다.

이런 추세는 현실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기부 경험률이 6년 새 상당히 줄었다. 올해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 1년 동안 기부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26.7%였다. 2011년만 해도 기부 경험률은 36.4%였다. 이는 2013년 34.6%로 낮아졌고 2015년엔 29.9%로 하락했다. 결국, 6년 만에 우리나라 기부 경험률은 9.7%포인트나 감소했다.

이런 현상은 이영학 사건 같은 특정 상황으로 인한 기부 감소보다 더 큰 문제다. 기부에 관심이 없다는 건 어려운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과 같다. 나 하나 먹고살고, 하고 싶은 것 하기도 벅찬데 궁핍한 타인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의미다. 이런 인식이 늘어나면 앞으로 사회는 더 삭막해질 수밖에 없다. 타인을 향한 공감과 연민이 사라진 사회의 미래는 뻔하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은 서로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무너진다. 그래서 양극화는 무섭다.

이를 해결하려면 일자리 창출, 지나친 경쟁 사회 지양, 복지와 여가 확대 같은 다양한 정치 사회 경제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어려운 이웃을 위하고자 하는 인식 전환이 우선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남을 위하는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곤경에 처한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유전자 발현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경남 하동의 한 고택의 부엌에는 문이 없다. 배고픈 이가 언제든 눈치 보지 않고 부엌에서 허기를 달랠 수 있도록 한 배려다. 과거에는 길손에게 하루 묵을 방을 내주거나 소박한 밥상을 차려주기도 했다. 옆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고 있지만, 그래도 연말에 한번쯤은 이런 유전자를 발현해보자. 그 유전자가 자신의 고유한 기능을 잃지 않도록. 그래서 서로 보듬고 살 수 있도록. kjg1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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