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시민의 생생한 삶이 담긴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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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동아대 건축학과 교수

부산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반영이라도 하듯, 2017년도 3분기에만 주거건축의 인허가 물량이 지난해보다 85% 늘어났고 면적도 132%나 증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건설사들이 단순한 주거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나섰다기보다 지난달 사상 초유의 '강화된 분양권 전매(거래) 규정 전역 시행'에 앞서 재개발사업에 나선 결과로 보인다.

현재 지역 불균형 문제 해소를 위한 서부산권 개발 계획을 비롯해 쇠퇴한 원도심을 살린다는 취지 아래 부산시민공원~북항~도심을 잇는 도심재생 마스터플랜 등이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고, 부산시와 공공기관들 역시 각종 개발 및 재개발사업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부산지방해양수산청도 북항과 인근 자성대부두, 우암부두, 철도용지 등을 포함하는 재개발사업과 신선·감만과 영도 지역을 아우르는 '부산항 북항 통합개발' 계획을 준비 중이다. 북항 재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부산항만공사도 전문가 그룹을 중심으로 북항의 효율적 개발을 위한 계획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부산항을 두고 정부기관, 부산시, 부산항만공사 등 각 기관이 개발 계획을 경쟁적으로 발표하는 상황 앞에서 어떤 것이 실제로 실현 가능성이 높은 계획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잇단 도시재생·개발 사업 추진
시·항만공사·민간 등 주체 다양
계획안들 엇비슷한 내용 겹쳐

서울시 건축정책위 등 사례 참고
다양한 장르 민간전문가들 포함
시민이 함께하는 공적 개발 돼야


최근에는 전쟁박물관 부지 선정을 두고 추진 단체와 해당 지자체가, 그리고 부산시립부전도서관 재개발을 놓고 부산시와 부산진구가 행정조정심판에 이르는 등 부산시와 해당기관, 지자체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갈등 양상을 보인다. 이처럼 대규모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기관과 부처마다 별도로 추진하고 있고 발표되는 계획안 내용이 이중, 삼중으로 겹쳐 '프로젝트 베끼기' 논란까지 나타나는 실정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개발'은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와 함께 빈곤의 탈피와 발전을 상징하는 말로 인식되었다. 개발이란 단어가 갖는 가치는 그 어떤 논리도 대신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개발을 상징하는 거대 토건사업과 건설 프로젝트가 어김없이 등장했고, '잘사는' 국가 건설을 위한 공공 개발 프로젝트 띄우기가 성행했다. 하지만 자원의 고갈에 따른 환경 악화, 그로 인한 기후변화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과거 '고도 생산에 의한 대량소비' 형식의 개발은 그 힘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도 부산 지역의 경우 여전히 단기간의 개발 붐으로 '대박 가능성'을 높이려는 사업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부산도 단순한 경제·정치적인 개발 논리에서 벗어나 삶을 중심에 두고 세상의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고(공존도시), 각자가 지닌 가치를 공유하면서(공유경제) 시민들의 삶을 담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일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는 경제적, 정치적 논리에 따른 개발이 아니라 공적 개발이 전제되어야 한다.

부산과 같은 대도시 개발프로젝트의 경우 주체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맥상을 해소하려면 서울시와 포항시, 영주시 등의 공공프로젝트 시스템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2013년부터 새롭게 개편된 서울시 건축정책위원회의 경우 도시의 균형 발전과 개발 사업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기획 단계부터 민간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늘려가고 있다. 나아가 공공건축가 선정 및 포럼 운영, 공공프로젝트 발주 방법 및 심의 자문, 건축학교 운영 및 특수사업 추진 등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업무의 틀도 가다듬고 있다. 공무원과 민간인 위원을 같은 수로 구성하고 부시장이 맡던 위원장도 민간 건축가가 담당토록 한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 민간 전문가는 단순히 도시의 공공 프로젝트 자문·심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개발정책에 관여해 정치·경제적 논리에 의한 개발을 방지하고 해당 기관 사이의 갈등을 조율한다. 공공 프로젝트의 기획에서부터 추진 과정에 걸쳐 쇄신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미 토지주택공사와 지자체에서도 도시정책과 공공개발 프로젝트에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일관된 성과를 보여왔다.

도시 개발의 공공성을 중시하는 영국에서는 국가와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공적 영역과 민간자본으로 대변되는 사적 영역, 두 영역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비영리단체나 사회적 기업인 '제3 섹터(the third sector)'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이제 부산시도 도시 개발 정책을 더는 몇몇 행정가와 전문가에게 의존할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민간 전문가, 시민들과 함께 살기 좋은 도시 만들기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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