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춤 배우는 주부들] 우리 전통춤이 정적이라고요? 딱 10분만 춰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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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춤은 통념과 달리 흥미가 있고 역동적이며 일반인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춤이다. 수강생들이 양태순 원장의 지도에 따라 기본 동작을 익히는 모습. 이재찬 기자 chan@

"한나아, 두우울, 세에엣, 네에엣… 한나아, 두울, 세에엣, 네에엣. 좋아요. 괄약근 조이고, 호흡 들이마시고, 상체를 밀어 올립니다. 좋아요, 천천히 내쉬면서 몸에 힘을 쭉 빼고…."

양태순(58) 원장의 장구와 구령 소리에 맞춰 수강생들이 조신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뒤로 물러났다 한다. 마치 나비가 날아가듯, 몸짓이 가볍고 날렵하다. 정적인 듯 동적이고, 동적인 듯 정적이다. 그렇게 10여 분 흘렀을까. 수강생들의 얼굴에 홍조가 떠오르고 콧등에 땀방울이 송송 맺힌다.

양태순 고전무용예술원
중년 여성들 '춤 삼매경'

천천히 호흡 들이마시고
근육 끌어올리며 춤 추면
온몸에 땀 날 정도로 격렬

하체·엉덩이 근육 발달하고
척추 질환 예방에도 도움
몸 즐거우니 마음도 즐거워


지난 6일 오후 부산 서면 영광도서 맞은편 건물 4층에 자리 잡은 양태순 고전무용예술원. 40㎡ 남짓한,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색색의 긴 치마를 차려입은 중년 여성 8명이 양 원장의 지도에 따라 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이들은 한국 전통춤을 배우는 주부 수강생들.

기자는 전통춤이 심신 수양에 그렇게 탁월하다는, 한 회원의 제보에 현혹(?)돼 확인차 예술원 문을 두드렸다.

전통춤,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 이미지는? 정적이다, 따분하다, 전문 춤꾼들만 추는 춤이다, 등등이 아닐까? 하지만 이날 취재는 전통춤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우선 양 원장의 전통춤 예찬론을 들어보자. "전통춤은 매우 정적인 듯하지만, 알고 보면 강렬한 동적 움직임이 있어요. 호흡을 들이마시며 근육을 끌어올리면 곧은 직선으로 서게 되고 호흡을 내쉬며 굴신(몸을 숙임) 할 땐 곡선이 되지요. 정확한 동작으로 한 10분만 춤에 집중해 보세요. 온몸에 땀이 날 정도로 격렬함이 있습니다."

동적이며, 재미있고, 일반인들도 많이 추는 게 전통춤이라는 얘기이다. 과연 그러했다. 이날 수강생들은 춤추는 내내 얼굴에서 환하고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 번 빠지면 쉽게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더욱이 심신 수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니, 전통춤을 다시 보게 된다.

4년째 이곳에서 춤을 배우고 있다는 김효정(55·경성대 교수) 씨는 "처음에는 어깨가 안 돌아가고 팔이 안 들려 치료 목적으로 춤을 시작했어요. 꾸준히 하다 보니 재미가 붙고 춤 자체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2년째 배우고 있다는 김정미(60) 씨도 거든다. "물건에 다리가 부딪쳐 늘 저렸는데, 춤을 추면서 깨끗이 나았어요. 갱년기 요실금 예방과 몸의 균형 감각 유지에 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춤에는 어떤 비방이 숨어 있는 걸까?

양 원장만의 오랜 노하우가 들어 있다고 수강생들은 입을 모은다. 11살 때 인간문화재 이매방(1927~2015) 선생에게 춤을 배우기 시작한 양 원장은 올해로 춤 인생 47년째.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이자 제97호 살풀이 전수자이다. 전국 국악대전 장원을 차지하는 등 숱한 상을 받은 실력자이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춤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두루 받는다.

하지만 그가 전통춤의 참맛을 느낀 것은 불과 10여 년 전부터라고. 인생의 갖은 간난신고를 겪은 뒤에 비로소 자신만의 춤 세계를 구축했다고 한다. 그는 전통춤을 일반인에게 가르치기 위해 가장 알기 쉬운 학습법을 개발, 보급에 나서고 있다.

양 원장은 "전통춤은 그냥 팔다리를 아름답게 흔들며 유희로 추는 춤이 아니에요. 핵심은 올바른 호흡과 감사의 마음입니다. 호흡을 들이마실 때 괄약근을 조이며 위로 몸을 들어 올리고 내쉴 때 풍선의 바람을 빼듯 위에서부터 차례로 힘을 빼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춤을 추면서 범사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이게 다예요."

그러고 보니 춤 연습을 하는 수강생들의 입에서 율동과 함께 "너무~ 감사합니다아~"라는 후렴이 끊이지 않는다. 감사하는 마음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춤을 추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전통춤을 제대로 추면 하체와 엉덩이 근육이 발달해 남자의 전립선 질환과 여자의 요실금 방지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 TV의 건강 프로그램에서 양 원장의 춤을 소개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또 몸이 곧게 펴지므로 몸의 균형 감각 유지, 척추 질환 예방과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전통춤의 기본은 호흡을 정확히 하고 하체의 힘을 기르는 것. 따라서 초심자들은 한 달가량 호흡법과 발 놀음을 배우며 다리 근력을 올리는 데 중점을 둔다. 이후 입춤을 추고, 살풀이나 승무 등 응용 춤으로 나아가게 된다. 
수강생들이 힘찬 동작으로 삼고무를 추고 있다. 이재찬 기자
양 원장은 뻣뻣이 서서 취재에 열중하는 기자에게 한번 해 보라고 권유한다. 올 게 왔구나, 멈칫하다가 용기를 내 봤다.

"한나아, 괄약근을 조이고, 두우울, 발을 세우고 몸을 쭉 펴세요. 세에엣, 천천히 숨을 내쉬고, 네에엣, 위에서부터 힘을 빼줍니다. 뒷굽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스텝이 꼬이고 까치발로 서 있기가 힘들어 몸이 기우뚱했다. 하지만 양 원장의 지도에 따라 천천히 해 보니 어려운 것만은 아니었다. "잘하시는데요. 가능성이 보여요." 수강생들이 '와!' 하면서 호응한다. 예의상 격려임을 알면서도 우쭐해졌다. 그러나 시작한 지 채 10분도 안 돼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이마에도 땀이 흥건해졌다.

이날 청일점도 있었다. 딱 하루 배웠다는 퇴직 세무서장 K 씨는 "평생 앉아서 하는 일을 하다 보니 허리가 안 좋아진 것 같다"며 "전통춤이 심신 건강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용기를 내 한번 와 봤다"고 말했다.

"세상에 몸치는 없어요. 전통춤은 누구나 자신의 체형과 체질에 맞게 출 수 있는 과학적인 춤입니다."

양 원장의 이 말에 "나도 한번 배워 볼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틈을 타 취재를 하는 동안 수강생들이 탁자 앞에 빙 둘러앉았다. 각자 나이를 물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한결같이 나이보다 동안인 데다, 무엇보다 얼굴마다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건강한 웃음을 줄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춤이 어디 있을까?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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