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미망인'은 욕보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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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개기다, 까탈스럽다, 걸판지다, 구안와사, 주책이다' 같은 말이 아주 오래전부터 표준어였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은 3년 전만 해도 비표준어들이었다. 숙육(熟肉)에서 온 말인 '수육'도 예전엔 '삶아 익힌 쇠고기'만을 가리켰지만, 쇠고기보다 '돼지고기 수육'이 더 많이 팔리는 현실이 인정돼 '삶아 내어 물기를 뺀 고기'로 사전 풀이가 바뀌었다.

중국에서는 자동차를 '치처(汽車)'라 부른다. 글자 그대로 하면 수증기로 움직이는 차라는 뜻. 증기기관에서 출발해 내연기관을 거쳐 이제는 전기로도 구동하는 시대이지만, 아직도 중국에서는 자동차를 기차라 부른다. 말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말 '사랑하다'가 처음엔 '생각하다'였지만, 그리워하고 아끼고 좋아하고 끌린다는 뜻으로 바뀌었듯이, 즈믄[千]과 가람[江]이 사라졌듯이, 태어난 말은 뜻이 바뀌거나 의미가 확장되거나 죽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쳇말로 '역주행'하는 말도 있다. 이를테면 '미망인'이 그러한데, 사전 뜻풀이는 이랬다.

*미망인(未亡人):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으로,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를 이르는 말. <춘추좌씨전>의 '장공편(莊公篇)'에 나오는 말이다.

이래서, 스스로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을 지칭하는 건,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왜 아직 죽지 않았느냐'는 뜻이 된다. 게다가 아내를 잃은 '남자'에게는 쓰지 않으니 성차별 언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칭이 아닌 타칭으로 미망인이 널리 쓰이자 국립국어원이 지난 3일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를 '남편을 여읜 여자'로 건조하게 바꿔 버렸다. 뜻풀이와 보기글 뒤에는 이런 단서를 덧붙였다.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이 당사자를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례가 된다.'

사람들 말글살이를 따라가며 사전을 손보던 국립국어원이 이 말만은 그러지 않고 원래 뜻을 다시금 강조한 것이다. 나라에서 만든 사전에다 아예 '타칭 미망인'은 실례라고 못 박은 건, 자칭이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쓰지 말라는 얘기.(게다가 스스로를 낮추어 미망인이라 하는 것도 이제는 그리 좋아 보이는 그림이 아니다.)

이러니, 연말이면 시상식장에서 가끔 보이는 '장한 미망인상'이라는 상 이름도 이제는 쓰기 곤란하게 됐다. 모순어법이거나 놀리는 게 아니라면, '장한'과 '미망인'은 결코 함께 쓸 수 없는 개념이 돼 버렸으니….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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