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대학 경쟁력, 외형과 수치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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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권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모두를 걱정시켰던 수능의 계절이 가고 있다. 모두가 수고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좋은 성적을 내고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이후에도 훌륭한 직장을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하고, 그 다음엔 승진을 위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경쟁 끝에 그나마 성취한 것들을 채 누리기도 전에 퇴직을 걱정하고, 또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옆집 아이가 학원에 다닌다는 얘기만으로도, 싫다는 자기 아이를 등 떠밀어 학원 가게 만드는 우리들의 경쟁적 불안감은 새삼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최근 우리 사회가 사람 중심의 정상사회를 회복해 가면서 비인간적인 처우를 개선하고 구성원의 행복과 복지를 차차 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모두가 걱정했던 수능 끝났지만
기다리는 건 또 다른 경쟁 사회

대학도 경쟁력 확보에 안간힘
신임 교수 임용·승진 기준 강화
정교수 등 대다수 구성원은 빼고
신규 교원에만 엄격 잣대 씁쓸

불안한 비정규직을 최대한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사람을 쥐어짜는 양적 평가보다 양은 적더라도 의미 있는 성과를 인정하는 질적 평가를 제고하는 일은 사회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모든 걸 다 이룰 수는 없겠지만 이 사회를 신뢰에 기초한 선진사회로 만들어가는, 그래서 미래의 방향을 바로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쟁이란 모름지기 자발적이고 상호 간에 건설적인 일을 도모할 때 자기희생의 의미가 있고 또 그 결과도 아름다운 법이다.

국가의 경쟁력을 담당해야 할 우리 대학들은 어떠한가. 대학도 경쟁사회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최근 10년간 임용된 거의 모든 교수는 계약기간과 직급정년이 있어서 정년이 보장되는 정교수가 될 때까지 일정 기간 승진하지 못하면 학교를 떠나야 한다. 조교수, 부교수로 승진할 때는 물론이고 정년심사까지도 그 기준을 양적으로 대폭 강화하고 연봉제를 확대하는 등 제 나름의 과감한 변화를 통해 경쟁력 확보에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다. 당근보다는 채찍, 제로섬의 경쟁에 따른 적지 않은 부작용이 아직도 엄존하지만, 덕분에 어느 정도의 경쟁력도 확보하고 교수직도 경쟁사회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의 변화도 가져왔다.

그동안 대학에서는 한 번 교수가 되면 평생을 보장받고, 그렇게 길들여진 나머지 각종 갑질과 성추문, 비리 등이 끊이지 않았다. 참된 연구나 교육보다 각종 특권과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고질적 타성이 있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일간지의 대학순위 평가 등 외부적 비교 경쟁에 지나치게 매달린 나머지, 최근 앞다투어 신임교수 임용 기준을 강화하고 승진 및 재계약의 조건을 경쟁적으로 상향시키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봐야 할까. 더구나 현직 교수들은 모두 제외하고 새롭게 임용할 신임교수들에게만 양적으로 몇 배나 강화된 계약조건을 적용하겠다는 꼼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교수가 되고자 하는, 넘치는 박사 인력의 높은 경쟁률이 이를 부추긴 것일까. 최근 세계 1% 안에 든다는 유능한 늦깎이 연구자를 못 알아보고 연구소 구석에 방치했던 것도 결국 선발과정이 문제였다. 상황이 열악해도 올 사람이 많으므로 현직 교수들에게 적용하지 않는 높은 임용 및 승진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 과연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유일한 길인지는 의문이다.

높고 엄격한 기준과 투명하고 공정한 교원선발 방식에 따라 모처럼 '초빙'한 훌륭한 연구자들에게 독립적이고 적절한 연구 환경과 지원은 약속하지 못할망정, 교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정교수들의 이른바 '철밥통'은 그대로 두고 아직 임용도 되지 않은 젊은 신임교원만 쥐어짜려는 무차별적인 계약기준의 강화는 한국 대학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일 뿐이다.

세계는 이미 양적인 평가의 질적 전환을 넘어 기존의 틀을 깨는 놀이터 같은 직장 공간과 창의적 협업 연구의 환경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몇 편의 논문을 썼느냐는 단순한 외형적인 수치보다는 그 연구자의 역량과 가능성을 눈여겨보는 해당 분야의 외부 혹은 해외 권위자들의 평가를 훨씬 중요시한다.

아무런 흥미와 고민 없이 문제풀이 기계가 되느라 지칠 대로 지친 학생들을 대학에 들여놓는 일이나,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논문 짜내는 일에 지칠 대로 지친 연구자에게 정년을 보장해 주는 일이나 비슷하게 한심한 일이다. 경쟁력을 높이기는커녕 하고 싶던 일도 하기 싫게 만드는, 그나마 있는 열정도 소진시켜 버리는 이 현실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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