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실버패션쇼] 은발의 패션 리더, 위풍당당 무대를 워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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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긍심으로 찬란한 무대' 제10회 실버패션쇼에서 실버 모델들이 당당한 워킹을 선보이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이 나이에 걸음 연습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서툴러도 재미있고, 새로운 도전 그 자체가 즐거움이에요."

지난 18일 오후 2시 30분 부산디자인센터 이벤트홀 대기실. 제10회 실버패션쇼 시작을 30분 앞둔 무대 뒤편은 생애 첫 무대를 기다리는 패션 리더들의 긴장과 설렘으로 터질 듯 충만했다.

복지법인 청전 '노인지원센터' 개최
예선 거쳐 선발된 모델 30명
2개월간 구슬땀 흘리며 맹연습

1~9기 선배들 무대로 오프닝
동선 틀려도 응원 박수 쏟아져
"자신감 넘치는 삶의 주인공 변신"


몸매가 드러나는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은 모델, 은발의 긴 꽁지 머리에 멋진 턱시도를 입은 모델…. 오늘을 위해 2개월을 준비한 실버 모델들이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줄 시간. 김정이(70) 씨는 "이런 즐거운 경험을 할 기회가 더 있다면 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강혜(67) 씨는 "매주 이틀, 2시간씩 하는 연습 시간이 늘 모자랐다"며 "이 나이에 이런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 긴장은 되지만, 떨리진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 씨는 "86세인 어머니가 이 패션쇼를 보러 오셨는데 당당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기쁘다"고도 덧붙였다.

고혹적인 검은 드레스를 입고 긴 속눈썹을 붙인 김광임(61) 씨는 "동선을 자꾸 잊어버려 젊은 사람들보다 2, 3배쯤 더 노력해야 했지만, 서로 가르쳐주고 힘을 북돋아 주면서 우애가 쌓여 이제는 실버 모델 모두 가족 같다"고 했다. 그는 손바닥의 땀을 닦아가며 말했다. "너무 하고 싶었던 일을 이룬다고 생각하니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많이 떨린다"고.

■위풍당당, 세상의 중심에 서다

오후 3시.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시작됐다. 박진희 사회복지사가 긴장한 모델들 앞에 서서 말했다. "무대에서 실수할 수도 있지만, 실수하더라도 안 한 척 뻔뻔(!)하시면 된다"고. "당당하고 멋진 모습 기대하겠다"고도 했다.

사회복지법인 청전 '노인생활체험관교육지원센터'가 10년째 열어온 이 실버패션쇼는 올해 10주년을 맞아 10기 모델 30명의 무대와 1기부터 9기까지 출연했던 선배 모델 20명의 축하무대로 진행됐다.
'건강한 나를 찾는 도전의 무대' 오프닝은 선배 모델 축하쇼로 열렸다. 선배답게 한껏 도발적인 눈빛을 한 모델들이 당당하게 무대에 나섰다. 와인색 반짝이는 드레스에서 살랑살랑한 살구색 드레스, 남성 모델들의 멋진 슈트까지. 선배 모델들의 무대는 찬란한 연륜으로 눈부셨고, 더 할 수 없이 당당했다.

우아한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옥덕금(70)씨와 검은 턱시도를 입은 오태근(73) 씨는 부부다. 8기(2015년) 모델로 출연했던 이들은 오프닝 무대에서 또 한 번 호흡 맞는 무대를 선보였다.

대기실에서 아내 옥 씨는 "너무 좋은 추억이어서 다시 한번 무대에 서고 싶었는데 이렇게 또 한 번 삶에 활력을 얻었다"며 "이런 활동을 같이하다 보니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던 부부 사이도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남편 오 씨도 "서로를 잘 아니까 호흡 맞추기가 수월했다"며 "딸 둘이 응원하러 왔는데 우리가 이런 활동을 하는 게 자녀들에게도 좋은 일인 듯하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도약, 내 삶의 주인되기

10기 모델들의 패션쇼는 드레스와 턱시도, 정장 쇼, 한복, 어우동 쇼 등으로 이어졌다.

무대 뒤편에선 "많이 떨린다"고 했던 김광임 씨는 모델 못지않은 워킹과 여유 있는 미소까지 보이며 "너무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뤄냈다.

은발과 검은 드레스, 은발과 우아한 한복이 최상의 조합임을 보여준 모델들. 등이 파인 드레스를 이들보다 더 잘 소화하는 모델이 있을까. 무대 위 아름다운 실버 모델들은 전지현이 부럽지 않았다. 객석에선 "예쁘다"란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와인색 베레모를 쓰고 예선전에 참가했던 남성 모델은 이날 패션쇼에서도 트레이드 마크인 베레모를 쓰고 세련된 정장 패션쇼를 선보였다. 동선이 좀 잘못돼도 모델은 웃음으로 무마했고 관객은 박수를 보냈다. 긴장한 나머지 손과 발이 같이 움직인 모델에게도 응원의 박수가 쏟아졌다.

9기 선배 모델과 10기 모델의 왈츠와 자이브 축하 공연도 펼쳐졌다. 실버 모델들의 2개월 땀과 열정은 신나고 경쾌한 무대로 이어졌다.

객석의 관객들은 모델들을 응원하러 온 가족이나 친구들. 객석의 패션 감각도 무대 위 모델 못지않았다. 노란 베레모를 쓰고, 노란색 폴라 티셔츠를 입은 노신사, 꽃무늬 원피스에 검은색 모자 차림의 여성까지. 그들은 셀카봉을 들고 친구의 워킹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며 응원에 동참했다.

시니어들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삶을 지원하기 위해 2007년부터 시작된 패션쇼. 치열한 예선전을 거쳐 선발된 모델들은 더없이 바빴던 2개월을 보내고 이날 무대를 선보였다. 자긍심으로 찬란한 무대는 참가자들의 우정의 무대이자 모든 세대가 함께 한 무대이기도 했다. 그들의 가을은 생의 두 번째 봄이 됐고, 그들은 이제 삶의 주인이 됐다.

강승아 선임기자 se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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