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사법부 블랙리스트' 실체 밝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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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호 변호사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후임으로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지명했다.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첫 대법원장 후보이자 여러 기수를 건너뛴 인사라 파격이라는 말이 나왔다. 진보 성향 판사 모임으로 분류되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초대 회장을 지낸 인물이어서 코드 인사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일부 야당의 반대에도 임명동의안은 지명 31일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파격 인사, 코드 인사라는 프레임만으로 발목을 잡아 공석으로 놔두기에는 대법원장이라는 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신임 대법원장 재조사 결정
재조사위 편향성 논란 제기
컴퓨터 속 파일 조사가 관건

의혹 뒷받침 문건 나오면
사법부 신뢰 추락 불가피
소모적 논쟁 비판 가능성도

대법원장은 13명의 대법관 임명 제청권이 있다. 대법관 전원이 참여해 중요 사건의 판례를 수립하는 전원합의체 재판장도 맡는다. 헌법재판소 재판관(3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3명), 국가인권위원회 위원(3명)의 지명·추천권을 갖고 있으며, 3000명이 넘는 전국 법관의 임용권을 행사한다. 법원 내부의 인사와 예산 등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도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이처럼 많은 권한을 가진 대법원장이기에 해결해야 할 현안도 산적해 있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사법부의 독립성 강화,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 실현, 법관 인사제도 개편, 전관예우 근절을 통한 사법 신뢰 제고, 상고심 제도의 개선 등을 개혁의 과제로 밝혔다. 그런데 지난 두 달 사이 언론을 통해 가장 많이 보도된 기사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재조사에 관한 것이었다. 지난 4월 대법원 진상조사위에서 사실 무근이라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김 대법원장은 끊임없이 재조사를 요구해 온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요구를 수용해 재조사 결정을 내렸다. 이를 위해 재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 최고참 판사인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위원장으로 앉혔다.

김 대법원장은 재조사위원회의 구성과 활동 방법 등 전권을 민 부장판사에게 위임했다. 그 후 민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재조사위원 6명을 발표했는데, 위원 6명 가운데 5명이 처음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한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이다. 대법원 진상조사위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재조사를 요구해 온 이들에게 재조사의 칼자루를 쥐여 준 셈이다. 벌써부터 재조사의 편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재조사위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사 결과를 토대로 미처 실시하지 못했던 컴퓨터 등 물증 조사를 하는 것이며, 따라서 재조사가 아닌 추가 조사다"라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재조사든 추가 조사든 조사의 핵심은 블랙리스트 파일이 들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법원행정처 컴퓨터 속 파일을 열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었다. 컴퓨터 안에는 업무와 관련된 내용뿐만 아니라 해당 컴퓨터를 사용했던 판사의 사적인 내용도 들어 있을 수 있어 파일을 강제로 열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재조사를 요구했던 판사들은 해당 컴퓨터는 국가 소유의 업무용 컴퓨터이므로 법원행정처장 등 상급자의 결정만 있으면 당연히 열어 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해당 컴퓨터가 공용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사적인 내용이 들어 있을 수 있어 영장 없이는 강제로 조사할 근거가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만일 영장이 필요하다고 해석할 경우 법원 컴퓨터 하나를 두고 검찰이 개입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점을 의식해서인지 추가조사위는 컴퓨터 저장 매체에 남아 있는 디지털 정보를 분석하는 디지털 포렌식을 검찰 등 수사기관에 맡기는 대신 법원 내부 전문가나 민간 업체에 맡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과연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존재하는 것인가. 만일 컴퓨터 파일을 열었을 때 의혹을 뒷받침하는 문건이 나올 경우 법원 내부의 반목과 갈등은 심화되고 사법부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미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이 배당된 상태라 관련자들 수사도 불가피하다. 반면 지난 진상조사위와 같은 결론이 내려질 경우 법원 내부의 충격과 파장은 최소화할 수 있겠으나 소모적인 논쟁을 벌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추가조사위 위원들은 이번 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 출근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다. 블랙리스트의 존부를 놓고 진실게임은 시작되었다. 어떤 결과로 마무리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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