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재개발은 꼭 문화유산 망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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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동아대 건축학과 교수

최근 몇 년 동안 도시 부산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공공디자인, 마을 만들기, 원도심 재개발·재생사업일 것이다. 공간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 지역공동체의 가치를 되살리려는 노력, 역사문화자원을 이용한 도시공간의 재창조 등으로 요약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여하고도 이들 사업으로 인한 문제점과 피해를 지적하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환경미화사업으로 전락한 공공디자인, 졸속으로 추진된 재생사업들이 넘쳐나고 있다. 공공기관마저 개발 논리에 가세하면서 소중한 공공재산들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형국이다.

초량일식가옥 훼손 위기
문화재자원 보존관리 허점 커
순식간에 사라진 것 너무 많아

외국 사례 배워 적용해야 한다
'없앤 뒤 후회'는 어리석은 일
북항 근대유산부터 보존해야

최근 훼손될 위기에 처한 초량일식가옥의 경우, 이런 문제가 복합적으로 나타난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국가 지정 등록문화재 349호인 초량일식가옥은 아무런 보호 대책도 없이 주변에 대규모 재개발공사가 진행되어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방치할 수 있을까라고 의아해할 수 있지만 근대기 문화재인 경우 이 같은 수난을 언제든지 겪을 수 있다.

건립된 지 50년이 경과한 역사문화유산을 대상으로 지정하는 등록문화재의 대부분은 낡고 오래된 원도심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아 재개발 혹은 재생사업에 포함되는 사례가 많다. 게다가 등록문화재는 일반문화재와는 달리 보호구역도 설정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 대규모 건설 공사가 진행되면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기 쉽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등록문화재법 도입 당시부터 논란이 됐다. 따라서 무엇보다 지역사회 혹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보존 의지와 통합적 관리가 중요하다.

최근까지 부산 원도심 지역에서 시행되었던 디자인, 재생사업 및 재개발로 인해 한국전력 중부산지사(등록문화재 329호) 인근의 붉은 벽돌 창고들과, 서양풍의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던 온천장 권철현 씨 가옥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보수동에 있었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던 부산지방임시측후소(1905년 건립) 2층 목조건물은 이미 해체되어 복원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뉴딜 재생 사업이 시작된다면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처럼 근대기 역사문화자산들은 예를 들면 우암동 소막마을과 같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부터라도 문화재자원에 대한 적극적인 보존 및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

초량일식가옥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먼저 개발과 보존을 담당하고 있는 행정조직 간의 거리부터 없애야 한다.

이미 유럽 국가들은 혼재되어 있는 제도를 통합하고 문화유산 보호와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현지위원회를 두어 개발과 보존을 위한 조정사항 및 허가관련 업무를 조율하고 있다. 2014년 건축문화유산 중점지대 계획을, 2016년에는 이를 통합 관리하는 문화유산지구 제도를 도입·시행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도 더 이상 역사문화 환경을 특별한 대상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부여하고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역사문화환경을 보전하고, 동시에 이를 활용하고 즐길 수 있는 지역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지역민에게 역사문화유산의 중요성도 알리고, 이것들의 사회 문화 경제 환경적 효과를 제시하기도 한다. 새로운 개발 계획은 지역 특성에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도록 유도하고, 지역의 독창적인 장소성을 창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리와 유사한 등록문화재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은 2015년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철강 조선 탄광)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부산도 개발과 보존이라는 양단의 선택으로 갈등을 야기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갖는 가치를 존중하는 공존 방법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음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부산항 북항의 경우, 최초 개항지였던 부산 원도심의 항만시설과 유산들, 6·25 동란기 구호 물자와 피란민들을 수용했던 시설의 원형들이 남아 있다. 이들 근대기 역사문화자원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통합계획이 반드시 필요하다. 없애버리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는 어리석은 일을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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