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문화 톺아보기] 20. 잊힌 영웅 정기룡
입력 : 2017-11-15 19:04:22 수정 : 2017-11-16 10:16:13
정유재란 7주갑… '60전 60승' 불패 신화의 주인공을 기억하라
지난 1일 충의공 정기룡 장군기념사업회의 창립총회 장면. 부산일보DB 임진왜란 당시 60전 60승 불패 신화의 주인공.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80번 이상 거론되는 인물이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잊힌 존재가 있다. 바로 정기룡(1562~1622) 장군이다.
그가 어떤 인물이었던가? 임란 7년간 상주성 탈환을 시작으로 성주, 고령, 합천, 초계 등의 여러 고을을 수복해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올라 경주, 울산을 수복하는 등 뛰어난 전공을 세웠다. 그게 60여 승.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다. '바다에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면, 육지엔 정기룡 장군이 있었다'는 말이 여기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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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룡 장군의 영정. |
1794년 홍량호가 펴낸 <해동명장전>엔 정기룡을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 "6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에 참전해 항상 적은 수의 군사로 많은 적과 싸웠지만,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50명의 기병을 이끌고 수천 명의 왜를 물리친 적도 있다. 왜와 싸울 때는 반드시 선봉에 서서 싸웠지만, 한 번도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임란이 끝난 후 선조는 이순신 권율 원균 등을 비롯해 선무공신(宣武功臣)을 발표했다. 하지만 거기엔 정기룡은 없었다. 후세의 사가들은 중앙정치권에서 정기룡을 견제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이순신과 원균은 이미 전사한 뒤였고 권율은 고령이었는데 비해 정기룡은 37살로 젊었다. 뿌리 깊은 정파 대립과 오랜 전쟁으로 국정이 피폐해지자 선조는 왕권이 위협받을 것을 염려해 정기룡을 배제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한마디로 30대 후반의 전쟁 영웅인 정기룡이 선조는 두렵고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이순신을 발탁했던 류성룡은 두 차례나 선조에게 정기룡의 재략(才略)과 목민(牧民)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천거하기도 했다. 그는 또 임진왜란 시기, 명나라로부터 관직을 받은 유일한 조선 장군이기도 했다. 37세인 1598년 초, 조명 연합군의 일원으로 함양 사척 전투에 참전했을 때다. 명나라 부총병 이예가 전사하자 명에서는 장군을 명의 군직인 어왜총병관으로 임명해 자국 군사를 지휘케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또한 덕장이었다. 전투에서 왜군의 수급을 확보하면 부하들에게 나눠줬고, 심지어 함께 전투했던 명나라 장병에게도 나눠줄 정도였다.
최근 하동군에서 정기룡 장군 기념사업회가 창립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늦었지만,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특히 올해는 정유재란 7주갑(七周甲·420년)이 되는 해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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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시에 있는 정 장군의 유적. |
장군을 기리는 사당은 경남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와 경북 상주시 사벌면 금흔리, 이렇게 2곳에 있다. 하나는 경충사, 또 하나는 충의사다.
하동은 그가 태어난 곳이고 상주는 그의 주 활동 무대였다. 정기룡 장군은 1562(명종17)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18세 되던 1580년 향시에 합격한 뒤 20세 때 상주로 간 것으로 알려졌다. 24세 되던 1586년 무과에 급제한 이래 61세(1622년)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상주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현재 하동 경충사에는 교지, 유서, 장검 등 3점의 정기룡 장군 유품이 보관돼 있다. 상주 충의사에도 장군의 활약을 기록한 <매헌실기> 목판본과 옥대 등 보물 제669호로 지정된 장군의 유물이 보관돼 있다.
하동과 상주는 이렇게 정기룡 장군과 인연을 함께한다. 정기룡 장군 기념사업회 창립을 계기로 장군과의 인연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경남 하동군과 경북 상주시가 나서서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사업에 적극 동참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터이다. 장군과의 인연을 계기로 서로 자매 시군이 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충의공 정기룡 장군 기념사업회 문찬인 집행위원장은 "하동·상주가 정기룡 장군과 인연이 있는 곳인 만큼, 학술 등 각종 행사를 상주와 공동으로 개최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화답했다.
'정기룡' 장군을 우리의 기억 속에서 되살리는 건, 이젠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